내가 두려워서, 내가 힘들어지는 게 싫어서 애써 모른척했던 걸지도 모른다.
“영어? 영어 해야지. 그런데 어렸을 땐 영어보다 한국어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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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도연이는 5살이 되었다. 얼마 전 5살, 2살 자매를 키우는 친한 언니를 만났다. 자연스럽게 아이들 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언니는 아이들이 잠들기 전 영어 원서 1, 2권은 꼭 읽어준다고 했다. 그리고 최근 들어 한국어 영상의 비중을 줄이고 영어 영상의 노출 시간을 더 늘렸다고 했다.
“에효 불쌍해라… 아직 5살인데 뭐 그렇게까지 영어공부를 해야 하나. 한국어 영상 재밌는 게 얼마나 많은데 보지도 못하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이제 고작 5살. 언니의 이야기를 들을 때까지만 해도 난 아직 ‘영어는 아니야’라는 주의였다. 무조건 한국어가 1순위, 한국어가 잘 뒷받침되면 영어쯤이야 언제 배워도 상관없다고 믿었다. 그런데 문득 집에 오는 지하철에서 이런 생각이 들더라.
“영어? 내가 너무 아무것도 안 하고 있나? 한국어가 우선이라는 핑계로 도연이한테 재미있게 영어를 접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건 아닌가…”
갑자기 조급함과 불안함이 밀려왔다. 책육아로 유명한 ‘뺑구닷컴’에 들어가 5살 영어공부를 검색했다. 36개월부터 영어 노출을 시작한 엄마들의 이야기를 차분히 읽어 내려갔다. 점점 머릿속에 닫혀있던 무언가가 ‘번쩍’하고 열리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무조건 한국어만 외쳐대던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달았다. 한국어에 충실한 것과 자연스럽게 영어를 노출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특히 영유아기 시기에는 ‘학습’이 아닌 영어의 흥미와 재미에 포커스를 두기 때문에 한국어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
내가 영어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이유는 또 있다. 어렸을 때 영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흔히들 이렇게 말한다. 언어는 어렸을 때부터 해야 금방 느니까, 대학에 가야 하니까, 영어 하나만 잘 먹고 잘 살 수 있으니까, 적어도 여행 가서 쓸 수 있으니까 등등. 그런데 난 이 이유에 대해 스스로 납득하지 못했다. 도연이에게 언제 어떻게 쓰일지 모르는 언어를 위해 엄마와 뛰어놀며 부대껴야 하는 시간을 소비하는 건 낭비라고 생각했다. 본인이 정말 필요하다고 느낄 때 배워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정말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다. 낯선 언어에 대한 ‘거부감’이다. 학교에 입학하면 무조건 영어 공부를 해야 한다. 이때 만약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접해서 낯설지 않고 이미 재미를 느끼고 있다면 어떨까? 자신감은 물론이고 시험 점수에 관계없이 영어 공부에 대한 원동력을 스스로 찾을 것이다. 그러나 영어를 많이 접하지 않은 아이라면? 언어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은 물론 자신감을 위해 선행학습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거부감이 생긴다면 더 큰일이다.
아이가 영어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자연스럽게 흥미를 가지려면 늦어도 36개월 이후부터는 시작하는 게 좋다고 한다. 5, 6살만 돼도 늘어난 한국어 실력만큼 영상과 책에 대한 호불호가 강해지기 때문이다. 한국어로는 이미 글밥이 꽤 되는 책을 읽는데 영어로는 ‘나는 선생님이야. 너는 직업이 뭐니?’를 읽어야 하니 시시하다며 재미없어하는 거다. 영상의 경우도 영어는 알아듣지 못해 스토리를 파악할 수 없어서 거부하는 아이들이 있다고 한다.
정보가 넘쳐나 오히려 본인에게 맞는 정보를 큐레이션해야 하는 시대에 한국어를 탄탄하게 키워야 한다는 핑계로 영어를 ‘뒷전’으로 밀어둔 것 같아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56개월, 그리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제라도 천천히 엄마표 영어를 시작할 계획이다. 거창한 건 없다. 초등학교 입학 전 도연이에게 영어에 대한 재미를 심어주는 게 내 목표다. 흥미를 느껴 본인이 스스로 공부하게 된다면 금상첨화이고 🙂
5살 영어공부 거창한 계획은 금물
“나 PT 끊었어. 살 빼야지”
헬스장에 다녀본 적도 없는 사람이 무조건 PT를 끊는다고 살이 빠질까? 다이어트 계획은 본인의 경험과 성향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헬스장에 다녀본 적이 없다면 PT를 끊기 번에 본인이 규칙적으로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작은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뿌듯함을 느껴보는 게 먼저일지도 모른다. 그래야 지치지 않고 더 큰 목표를 위해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어교육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엄마표 영어를 하겠다고 덜컥 50~100만원의 비싼 전집을 들이거나 영어 학습지를 시작하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본다. 물론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면 달라지겠지만. 많이 구매한 전집 중 하나는 아이 취향에 맞는 게 존재할 테니 말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면 조금씩 다양하게 원서를 구매해 아이의 취향을 찾아가는 게 돈도 절약하고 아이도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중고도 적극 활용하면 좋다.
나는 노부영 베스트 15를 중고로 구매했다. 다양한 노부영 시리즈 중 베스트 15를 선택한 이유는 노래의 길이가 적당하고 시리즈 중 가장 신난다는 평가가 많았기 때문이다. 노래를 좋아하는 도연이가 흥미를 느끼고 자주 볼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베스트 15가 성공하면 그다음 노부영 스테디 베스트를 중고로 구매할 계획이다. 그리고 원서는 아니지만 빅키즈 영어를 중고로 들였다. 한국에서 나온 영어책도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것 역시 노래가 좋다는 리뷰가 많아서 기대 중이다. 노부영 베스트 15와 빅키즈 영어, 도연이가 흥미를 느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또 다른 영어책을 찾아 헤매야 할지도 모르겠다.
영어 영상은 저녁에 30분~1시간씩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는 포켓몬 키즈 티비의 영어 동요, 코코 멜론, 슈퍼심플송, 베베핀을 틀어줬는데 도연이의 원픽은 베베핀이었다. 노래가 빠르지 않고 베베핀 가족이 귀여워서 좋아하는 것 같다. 워낙 노래 영상을 좋아해서 그런 지 한 시간은 거뜬히 보더라. 찾아보니 넷플렉스에도 영어 애니매이션이 많았다. 주말에는 가족이 함께 영화 보듯이 넷플렉스를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엄마표 영어 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을 받은 영상을 위에 첨부한다. 현서아빠의 존재는 이미 알고 있었는데 이 영상을 보고 엄마표 영어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한국어는 언어 그 이상이다.
“영어보다 한국어가 우선이라고 하는데 왜 그렇다고 생각하세요?”
라는 질문에 ‘모국어인데 당연히 잘 해야죠’라는 답변은 어딘가 부족하다. 핵심이 없는 느낌이다. 난 모국어는 언어 그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소통의 수단임은 물론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담아내는 소중한 그릇인 것 같다. 모국어인 한국어가 튼튼하고 풍부할 때 아이는 자신의 생각을 더욱 명쾌하게 표현할 수 있다. 나아가 문해력 =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과 논리적인 사고 등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 비정상회담으로 유명해진 타일러와 다니엘 린데만을 예로 들고 싶다. 이들은 한국인 못지않게 어쩌면 한국인보다 더 어떤 문제에 대해 논리정연하고 딱 부러지게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아마도 이런 능력은 그들의 탄탄한 모국어의 그릇을 통해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영어를 시작하면 그 시간만큼 한국어에 대한 인풋이 줄어드는 건데 괜찮을까요?”
나도 이런 걱정 때문에 지금까지 영어를 시작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보를 찾다보니 부모가 영어와 한국어의 비율 조절만 잘 하면 두 언어가 상충하는 일은 없다고 한다. 특히 영유아기 때는 본격적인 학습이 아닌 영어를 노출하며 아이에게 흥미를 심어주는 단계이기 때문에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단, 이 기간에 부모의 욕심으로 문법에 집중하거나 아이의 실력에 맞지 않는 책 읽기를 하게 되면 부작용은 일어날 수 있다. 이 시기는 무조건 재미와 흥미 위주여야 한다. 절대, ‘학습’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영어 영상을 보는 시간과 원서 1, 2권 읽기를 제외하면 그 외의 시간은 모두 한국어를 위한 시간이다. 함께 책을 읽고 많은 대화를 나눈다. 나는 도연이가 하원하면 정말 입이 아프도록 이야기를 한다.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부터 저녁은 뭘 먹고, 내일을 무얼 하고 등등. 그리고 책을 읽은 후엔 아이의 생각을 물어본다. 혹은 일부러 엉뚱한 질문을 해서 아이가 대답을 하며 다양한 단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절대 입을 쉬어서는 안 된다.
꾸준함을 이길 수 없다.
한 번 목표를 정하면 주저하지 않고 실행하는 건 내 장점이다. 그러나 단기간에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금세 지치고 동기를 상실한다. 뚜렷했던 목표가 흐려진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제 어느 정도 나이가 먹어서 내 패턴을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힘들거나 기분이 가라앉으면 그 감정을 인정하고 한 박자 쉬어가기도 한다. 다시 에너지를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한다.
아이의 영어공부가 1, 2년 만에 끝나는 거라면 이런 내 조급함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 공부는 끝이 없다. 특히 언어는 흥미를 잃으면 끝이다. 깊지 않지만 잔잔하게 가는 ‘꾸준함’이 필요한 과목이라고 생각한다. 토끼가 아닌 거북이가 되는 걸 무서워하지 말아야 한다.
꾸준함을 유지하기 위해 내 나름대로 장단기 목표를 세웠다. 가장 단기적인 목표는 한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영어 영상을 노출하고 영어책 1, 2권을 읽어주는 거다. 30일 달력에 체크하며 스스로에게 동기부여를 하려고 한다. 그다음 목표 기간은 세 달이다. 뭐든 습관이 되기까지 3개월의 시간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3개월 동안 1, 2권의 책 읽기가 익숙해지면 하루에 읽는 원서의 개수를 늘릴 계획이다. 그렇게 앞으로 1년간 꾸준히 영어 영상과 책 읽기에 습관을 들이는 게 장기적인 목표다. 지금 도연이는 내가 ‘Good Night’만 해도 한국말로 이야기하라며 쑥스러워한다. 언젠가 당당하게 도연이 입에서 ‘Good Night’이 나오는 날을 기대해 본다.
그리고 또 하나. 아이의 영어 공부를 위해 엄마의 공부는 필수라고 생각한다. 엄마표 학습은 내 아이에게 맞는 정보를 추려내고, 아이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찾고 또 찾고의 반복이다. 원서의 길이가 길어지면 예습도 해야 한다. 원서를 재미있게 읽어주기 위해 발음 연습, 톤 연습도 해야 한다. 아이와 함께 나 역시 아는 만큼이라도 영어로 말할 줄 아는 용기와 베짱이 필요하다. 이렇게 쓰다 보니 넘어야 할 산이 참 많아 막막하다. 하지만 활용할 수 있는 정보가 무궁무진한 시대에 태어난 아이들에게 알맞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기에 어쩔 수 없다!
한국어 향상을 위해 매일 단 한 권이라도 책을 읽고 많은 대화를 나누고 우리집만의 영상 규칙을 만들었던 것처럼 영어도 그렇게 천천히 나아가면 될 거라고 믿는다. 나처럼 5살에 엄마표 영어를 시작하려는 분들, 혹은 아이의 영어 공부에 고민이 있는 분들에게 내 글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