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2시 여지없이 도준이는 깼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잠에 예민한 아이라 아기 때부터 지금까지 통잠을 잔 적은 손에 꼽는다. ‘이번엔 또 얼마큼 울다가 잠드려나’생각하고 있는데 평소와는 다른 행동을 보인다. 흠칫 놀라 난 어둠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다짜고짜 울며) 아빠 아빠 아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버적버적 문쪽으로 걸어간다. 도준이가 나가는 순간 다른 가족이 잠에서 깨는 건 따놓은 당상이었다. 물론, 우는소리만으로 잠을 깨우기에 충분했다. 안되겠다 싶어 불을 켜고 문 앞에 앉았다.
“도준아. 지금은 나가면 안 돼. 아빠도 할머니도 다 자고 있어”
22개월 아이에게 이런 내 말이 먹혔을까? 당연히 아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똑같은 일이 몇 번 반복되자 우는 시간이 짧아졌고 도준이가 떼쓰는 강도도 줄어들었다. 어떤 방법으로 아이가 변화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면 아래의 글을 읽어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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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개월 훈육 밤이 괴롭다.
도준이의 강성 울음이 시작됐다. 안 그래도 아빠가 없어서 서러운데 갑자기 내가 불을 켜고 문을 막으니 감정이 폭발한 모양이었다. 아빠가 와서 사그라들 울음이면 당장 남편을 불러왔을 거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경험상 도준이는 옆에 없는 사람을 찾으며 운다. 아빠와 잠들면 울며 나를 찾고 나와 잠들면 아빠 혹은 할머니를 찾았다. 당사자가 와도 울음은 계속됐다. 일종의 잠투정인 것이다. 더 어릴 땐 잠투정이라고 생각해서 다 받아줬다. 안으라면 안고 일어나라면 일어났다. 거실로 나가라면 나갔다.
21개월 무렵 더는 안되겠다 싶었다. 아무리 밤중이라도, 잠투정이라도 안되는 건 안된다고 가르쳐야겠다 생각했다. 그때부터 규칙을 정했다. 잠은 엄마랑만, 없는 사람을 찾아도 절대 오지 않기로. 그리고 지금은 인고의 훈육 과정을 거치고 있는 중이다.
강성 울음을 시작한 도준이는 1시간 가까이 울었다. 이러다 경기하는 건 아닐지 나조차 걱정이 될 정도로 목에 핏줄을 세우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발악했다. 이미 벌건 얼굴은 눈물 콧물 범벅이었다.
“으아앙 아빠, 아빠, 할머니”
“그렇게 울어도 아빠랑 할머니는 오지 않아”
“아냐, 아냐, 안아, 안아”
“도준이가 그치면 안아줄거야”
“으앙 아니야, 아니야, 안아. 안아”
“안돼. 울음 그쳐”
“(더 큰 소리로 울음) 으앙”
이 대화의 무한 반복이었다. 그리고 1시간이 지났을 무렵 도준이는 결국 나에게서 떨어져 자리에 앉았다. 제법 힘이 빠진 모양이었다. 그리고도 한참을 울었지만 마지막엔 ‘그만 울 거야?’라는 나의 물음에 ‘응’이라고 대답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싸움이 마무리됐다. 집은 조용해졌다.
차분해진 도준이를 꽉 안고 난 이야기했다. 도준이는 지금 엄마랑 자고 있다고, 자고 있을 때 다른 가족을 찾아도 오지 않는다고. 엄마가 옆에 있으니까 엄마한테 안아달라고 이야기하라고. 도준이는 서럽게 흐느꼈지만 받아들인 듯했다. 누워서 자겠다고 하기에 아이를 눕히고 토닥였다. 금세 잠이 들었다.
22개월 훈육 유아 사춘기의 시작
첫째 도연이를 키웠기 때문에 둘째 육아는 그리 힘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모든 기억이 사라진 듯 두 번째 육아도 역시나 힘들고 어렵다. 도연이도 잠에 예민했지만 밤에 이렇게 강성 울음으로 나와 대치한 적은 없었다. 돌이켜보면 도연이는 3살이 고집과 짜증의 정점이었다. 한 시간씩 울며 물을 일부러 쏟고 컵을 던지기 일쑤였다. 당시에는 도준이를 임신하고 있던 시기라 아이가 동생 때문에 예민하게 구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 역시 성장과정 중 하나였던 것 같다. 그리고 도준이는 그 기간이 누나보다 조금 빨리 찾아온 모양이다.
어떤 일을 두고 어떻게 해야 내게 이득이 되는지, 우선순위는 무엇인지를 판단하도록 만드는 사고 능력(인지발달)은 만 36개월이 지나야 가능해진다고 한다. 감정의 뇌가 아닌 생각하는 뇌의 발달이 이 시기에 이루어지는 거다. 즉 만 36개월 이전에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엄마의 설명을 통해 아이를 설득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이해하면 된다. 감정의 뇌만 발달해있기 때문에 본인의 감정 속에 꽁꽁 갇혀버려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도준이가 딱 그렇다. 본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때 짜증과 울음이 시작된다. 그 어떤 질문과 설득도 통하지 않는다. 엄마에게 와서 진정하라고 말해도 계속 떼를 쓰며 운다. 이런 아이에게는 우선 스스로 감정을 진정시키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가 진정된 후 엄마의 관심을 나타내면 된다.
너가 아무리 울어도 원하는 걸 얻을 수 없어
라는 걸 알려주는 과정이다.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거다.
“아직 두 돌도 안 됐는데, 한 시간 동안 아이를 울려야 해요?”
라고 물을 수 있다. 나도 이렇게 생각한 적이 있다. 두 돌도 안 된 아이랑 무슨 기싸움이야… 이러다가 애착에 문제 생기는 거 아닌가…라고 말이다.
두 돌 가까이 되면 아이들은 우리가 하는 말의 대부분을 알아듣는다. 단어 자체의 뜻을 몰라도 상대방의 제스처와 말투, 분위기를 통해 이해한다. 평범한 의사소통과는 다른 방식의 그것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고집을 부리는 아이를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냥 놔둔다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 것과 마찬가지다. 감정의 조절 능력을 기를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치는 거다.
스스로 진정시키며 감정을 조절할 줄 아는 능력을 기르지 못한 아이는 성장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영영 본인의 감정에만 매몰된 채 상황을 이해하게 된다. 내 감정에 대한 이해 없이 억울함과 분노만 남는 거다. 단계에 맞게 조절 능력을 기른 아이는 다르다. 4살 정도가 되면 떼를 쓰며 울지만 엄마의 이야기에 반응할 줄 알고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경험상 5살이 되면 떼를 쓰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든다. 어리숙하지만 협상을 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시기적절하게 훈육을 하지 않으면 훗날 아이도 엄마도 더 고생하게 된다는 걸 도연이를 기르면서, 그리고 주변 지인들을 보며 깨달았다. 그래서 밤이면 찾아오는 도준이의 떼울음에도 지치지 않고 잘 버텨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머리로는 이해를 하면서도 가끔씩은 언제 그칠지 모르는 울음소리에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다. 도준이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내가 힘들면 그만일걸. 둘 다 힘들 필요 있나?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며 내 의지를 꺾으려 든다.
그럴 때마다 난 도준이의 미래를 생각한다. 지금 내가 포기하면 아이의 앞날이 더 힘들어질 거라고. 진정으로 아이를 위한다면 지금 잘 해야 한다고 말이다. 분명 이 시간이 영양분 가득한 토양이 되어 아이의 성장을 뒷받침해 줄 거라고 믿는다. 매일밤 언제 울음이 시작될까 긴장의 연속이지만 분명 끝은 있기 때문에 견딜 수 있다 🙂 잠에 예민한 아이를 둔 부모 혹은 나처럼 고난의 22개월을 지나고 있는 부모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다…!
첫아이를 키우며 어떻게 훈육을 해야할지 몰라 고민하고 있다면 아래의 영상을 참고하면 좋다. 16개월~30개월에 아이들이 왜 떼쟁이가 되는지 이해하면 아이를 대할 때 마음이 훨씬 편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