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가살이 장점 이렇게 좋은 걸 왜 안 해?

“나는 절대 우리 엄마랑 같이 못 살아. 비슷해서 같이 살면 맨날 싸울걸”

이랬던 난 3년째 친정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즉 남편은 3년째 처가살이 중인 셈이다. 친정집에서 남편과 함께 지낸다고 하면 10명 중 7명은 이런 질문을 한다.

“남편 괜찮아? 불편해하지 않아?”

시집살이, 처가살이 등의 단어가 주는 느낌은 그리 좋지 않다. 어쩐지 상당히 의존적이고 종속되어 있는 느낌이다. 단어에서 풍기는 느낌은 사람들에게 편견을 만든다. 저 질문 속에는 아마도 ‘남편이 장모님 눈치 보고 사느라 고생이겠다’라는 의미가 담겨있을 수도 있다. 물론… 이것마저 내 편견일지도…?

우리 남편, 나보다 더 장모님하고 잘 지낸다. ‘김다운’이라는 사람을 10년째 겪고 있어서 그런지 데칼코마니인 장모님과의 관계도 수월하다. 심지어 엄마는 나에겐 없는, 그래서 남편이 항상 아쉬워하던 그 ‘능력’을 갖고 있다. 처가살이 장점이랄까. 바로 술이다. 음주가무에 능한 장모님과 한잔할 때 보면 정말 재밌게 논다. 나도 신기하다. 어쩜 저렇게 60대 후반의 장모님을 편하게 대할 수 있을까?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보다 장모님 사위 관계가 더 쉽다지만 가끔은 포옹까지 하는 걸 보면 남편이 존경스러울 때가 있다. 난 시아버님한테 저렇게 못해…

이런 우리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친한 언니가 어느 날 연락이 왔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던 건 알고 있었는데, 글쎄 한 번 만에 합격을 했다고. 역시 될놈될이라고, 너무 축하한다고 격한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언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붙은 건 너무 좋지 정말. 근데 우리 부부 주말부부하게 생겼다. 내가 경쟁률 낮은 곳으로 간다고 친정 쪽에다가 시험을 쳤잖아. 친정엄마한테 애 맡겨야 하는데 괜찮을까? 그리고 주말마다 남편 오면 친정에서 지내야 하는데… 너네 남편 장모님이랑 엄청 잘 지내잖아. 이야기 좀 들려줘 봐봐”

나도 초반 6개월 동안은 혼자서 맘고생을 했다. 아마 엄마도 그랬을 거다. 서로 맞춰가는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이 흐르며 내 나름대로 친정엄마와의 동거를 위한 기준을 정했다. 지금은 엄마에게 서운한 마음이 생겨도 내가 정한 기준을 되뇌며 날 다독인다. 친정살이를 앞둔 친한 언니에게 내가 정한 ‘기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역시 함께 사는 거 만만치 않구나’라는 대답이 가장 먼저 나왔지만 그럼에도 덕분에 ‘방향’을 정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엄마는 들러리, 육아의 주인공은 나

친정엄마와 함께 산다고 하면 ‘편하겠다’라는 말을 가장 먼저 듣는다. 혼자서 애 보는 게 얼마나 힘든데 친정엄마가 도와주니 얼마나 좋냐고.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친정살이를 결정하며 가장 먼저 내가 다짐한 건 ‘되도록 엄마의 생활은 그대로 유지하자’였다. 어디까지나 엄마는 육아의 들러리일 뿐 주인공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고정적으로 출퇴근을 하는 일을 하지 않는 이유도 바로 이거다.

에어로빅 운동, 친구들과의 여행, 모임을 통해 삶의 활력을 얻는 분이 원치 않는 육아로 갑자기 발이 묶인다면 어떨까. 서운함은 쌓이고 언젠가 그 서운함이 터져 엄마와 나 사이는 틀어지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엄마의 제안은 처음부터 ‘육아를 도와줄 테니 너도 네 일을 찾아봐’가 아니었다. ‘육아하며 너도 네 일을 찾아봐. 엄마가 간간이 아이들도 봐 줄게’였다.

물론 함께 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육아에 참여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나 혼자 와다다 거리며 등원 준비를 하거나 하원 후 저녁에 목욕까지 시키는 모습을 보면 본인도 ‘내 엄마이기에’ 도와주실 수밖에 없나 보다. 그냥 놔두라고, 혼자 해도 된다고 말은 하지만 엄마이기 때문에 몸이 먼저 움직이는 걸 나도 이제 이해할 수 있다. 그래도 주말과 공휴일엔 100% 나와 남편이 육아를 담당한다.

처가살이 장점 냉장고에 붙어있는 가족 스케줄표

우리집 냉장고에는 한 달 스케줄 표가 붙어있다. 가을이 무르익은 11월엔 엄마의 약속이 빼곡하다. 엄마의 여행 계획이 생기면 오빠와 그 기간 동안 어떻게 지낼지 상의한다. 몇 시쯤 퇴근하면 좋을지, 아침엔 어떻게 움직여야 도움이 되는지, 새벽 운동은 언제 할 수 있는지 등 다툼이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은 미리 대비한다. 이렇게 꼼꼼히 세워두어야 육아가 힘들다는 핑계로 남편과 싸우지 않더라.

엄마가 정리해 내가 요리할게.

요리를 좋아하는 건 내 강점, 정리정돈은 엄마의 강점. 김장이나 어려운 한식 요리를 제외하고 우리집 요리 담당은 이제 나다. 식비 및 생필품을 사는 비용은 엄마와 반반 부담하고 있는데 내가 관리한다. 나이가 있으시다 보니 이제 장 보러 다니는 것도 힘이 든다고 하셨다. 어떤 반찬을 할지 생각하는 것도 귀찮으시다고. 반대로 난 메뉴를 구상하고 장을 보고 요리를 하는 그 과정이 너무 즐겁다. 내가 해 준 요리는 언제나 맛있게 드셔주시는 엄마를 보며 힘을 얻기도 한다 🙂 ‘덕분에 잘 먹었다’라며 저녁 설거지는 대부분 엄마가 담당한다.

처가살이 장점 김치하는 엄마 모습

반면 아직까지 빨래 및 정리정돈은 엄마가 해 주신다. 아이들 장난감이나 책 정리는 내가 하지만 집안의 전체적인 정리정돈은 엄마가 더 잘하신다. 그래도 나 어릴 때 365일 내내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셨던 걸 생각하면 많이 포기하고 사시는 것 같긴 하다. 아이들 케어에 요리만 해도 내 체력은 후덜덜인데, 매일 청소기에 걸레질이라니 상상할 수도 없다. 남편은 뭘 하냐고? 청소기와 화장실 청소 담당이다. 바쁜데도 없는 시간 쪼개어 잊지 않고 실천해주는 것에 감사하다.

집안일 중에서도 분명 자신 있고 좋아하는 분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요리는 싫은데 설거지는 괜찮아, 빨래는 싫은데 청소는 할만 해’처럼 말이다. 우리도 처음부터 딱 떨어지게 역할을 정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살다 보니 서로의 호불호가 보이고 어떤 부분을 힘들어하는지 알게 되더라. 서로 눈치 보지 말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집안일의 역할과 규칙을 정하는 건 어떨까? 이때 나이 드신 엄마보다 내가 더 많이 움직인다는 생각이 바탕으로 깔려있는 게 좋다. 그래야 딸에게는 쉽게 말하지 못하는 친정엄마의 ‘서운함’을 예방할 수 있다.

내려놓는 습관

시댁 혹은 친정에서 부모님과 함께 산다고 하면 흔히 걱정하는 것 중 하나는 소위 말하는 ‘아이들 버릇’이 나빠질 수 있다는 우려다. 티비를 수시로 틀어줄까 봐, 군것질을 마음대로 사줄까 봐, 아이의 요구는 뭐든 들어주실까 봐 등등… 아이의 부모가 정한 규칙과 조부모의 규칙이 달라서 아이가 혼란스러워하는 건 아닐지 걱정한다.

감사하게도 친정엄마는 내가 정한 규칙을 그대로 지키려고 노력하신다. 티비도 정해 놓은 시간에만, 군것질은 밥을 다 먹은 후에, 그 밖에 암묵적으로 지켜지고 있는 소소한 규칙들도 잘 기억해 두고 지켜주신다. 단, 예외인 경우가 있다. 바로 20개월 도준이가 바깥에서 울며불며 떼를 쓸 때다. 남자아이라서 흥분하며 떼를 쓸 때는 그 힘을 감당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이럴 땐 친정엄마가 편한 방법대로 해결해도 된다는 예외적인 룰을 만들었다.

그런데 만약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조부모님이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아 할까. 부모님들 중에는 자식들의 이야기는 듣지 않고 본인들이 편한 방법대로, 본인들이 생각하기에 옳은 방법으로 육아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지켜보는 입장에선 애가 탄다. 나이 드신 부모님의 생각을 바꾸려고 하는 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것만큼 어려운 도전이다. 이럴 땐 문제가 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그 가능성조차 차단하는 게 최고라고 생각한다.

티비가 걱정이라면 거실에 티비는 치우고, 군것질이 걱정이라면 군것질은 아예 사다 놓지 않거나 숨겨놓는 거다. 아이가 바깥에서만 계속 놀고 싶어 한다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 조부모님이 아닌 아이에게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게 좋다. 하루의 규칙을 잘 지키면 칭찬 스티커를 준다든지, 지키지 않았을 땐 작은 불이익을 준다든지 등의 방법을 통해 아이가 스스로 규칙을 잘 지킬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더 빠를 것이다.

그래도 발생하는 일에 대해서는 내려놓는 습관을 기르는 게 좋다고 본다. 부모님이 내 가치관대로 100% 육아를 해내주길 바라는 것부터가 엄청난 욕심이다. 아이의 식사를 챙기고 스케줄을 관리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대신 퇴근 후, 주말에 아이와 이야기를 충분히 나누고 엄마의 사랑을 듬뿍 준다면 어긋남 없이 잘 자라날 거라고 믿는다.

친정엄마와 함께 살며 불편함이 전혀 없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장점이 훨씬 많다고 생각한다. 내가 육아를 전담하고 있긴 하지만 도와주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주 든든하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까지 듬뿍 받으며 잘 자라고 있다. 나도 친정엄마 덕분에 늦게나마 내 커리어를 찾기 위해 노력할 수 있으니 감사하다.

부모님과의 합가를 계획하고 있다면 시댁, 친정 부모님과의 대화 시간을 자주 갖기를 당부하고 싶다. 모든 서운함과 오해는 ‘대화의 부재’에서 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어려워도 내가 먼저 따뜻하게 다가가고 솔직하게 이야기한다면 어색해하던 부모님도 천천히 변화할 거라고 생각한다. 이 부분은 나도 여전히 노력 중이다. 엄마에게 서운함이 생겼을 때 가끔씩 틀어보는 영상을 아래에 첨부한다. 지금 어떤 모습의 부모님이든 내가 우리 아이를 사랑하듯 그렇게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셨음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기를 바라본다 🙂

1 Comments

  1. 확실히 네이버에서 보는 것보다 사이트가 편한 느낌이 있다. 왜일까🤔 생각 정리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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