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맘, (미래의)워킹맘이 되기로 했다.

전업맘 워킹맘이 되기로 결심하다

현모양처(賢母良妻). 어질 현, 어머니 모, 좋을 양, 아내 처. 어진 어머니이면서 착한 아내. 하지만 내가 정의하는 2023년의 현모양처는 다르다. 가사와 육아는 기본, 자기 계발을 하며 본인의 삶에 충실한 사람.

1994년 7살 유치원 생일 잔칫날, 친구들 앞에서 내 꿈은 현모양처라고 말했더랬다. 그리고 난 지금 내가 말한 대로 2023년식의 현모양처의 삶을 살고 있다. 비록 풍요로운 현모양처의 삶은 아니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7살 생일 잔칫날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돈이 많은 현모양처가 되고 싶어요”라고.

전업맘으로 쭉 살 것 같았던 나는 이제 없다.

결혼 전 일본어 관광 가이드, 스타벅스 바리스타, 카페 창업의 길을 거쳐 결혼 후에는 파리바게트, 남편이 다니는 회사의 블로그 글을 작성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다. 그렇게 쭉 도연이를 낳고 키웠다. 둘째가 생긴 후로는 일이 많이 줄었고 지금은 쉬고 있다. 회사가 어려워지며 잘렸다고 해야 맞겠다. 덕분에 온전히 가사와 육아,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7살의 내가 원했던 대로 이루어졌으니 행복하겠다고?

7살 전업맘이자 현모양처를 꿈꿨던 나는 이제 없다. 도준이를 가진 후로 현모양처의 꿈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나도 안다. 진작에 알았어야 했다. 나는 독립적이지 않았고 무지했다. 결혼 후 남편의 일을 돕는 게 나를 그리고 우리를 위해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남편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니 잘 될 줄만 알았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미래가 흘러갈 거라고 믿었던 당시의 난 참 오만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게 있었다. 우리는 분명 이쪽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데 큰 흐름은 우리를 자꾸만 반대 방향으로 이끌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고, 결국 회사는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 (모든 일을 다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남편은 더 나은 상황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대표님의 마인드도 많이 바뀌었다.)

현모양처의 꿈을 포기한 이유가 비단 남편의 회사 상황 때문만은 아니다. ‘나’라는 사람 자체가 현모양처에 맞지 않는다. 난 목표 지향적이며 자기주도적이고 눈에 보이는 결과를 통해 만족감을 얻는 타입이다. 가만히 있으면 불안증이 도진다. 일을 하지 않는 지금도 친구를 만나거나 드라마를 보는 여유는 누리지 않는다. 의미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하니까. 이런 내가 왜 집에서 가사와 육아를 자처하고 있을까?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아르바이트라도 하라고. 돈이 급하면 뭘 못하냐고. 목표 지향적이라면서 왜 아무 일도 하지 않느냐고. 결국 집에만 있을 핑계를 만드는 거 아니냐고.

아이가 잠은 잘 자나요?

가장 큰 이유는 5살, 2살 남매 때문이다. 흔히 복직을 앞두거나 취업을 고려하는 엄마들이 하는 고민이 있다. 한창 엄마 손을 필요로 하는 나이에 일을 하는 게 맞을지, 양가 도움을 받을 수 없다면 아이들이 아플 때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지, 일을 한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짜증은 내지 않을지 등이 바로 그것이다. 나도 그렇다. 일을 못하는 이유 중 상위권에 이런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직을 하고 취업을 하는 엄마들은 분명히 있다. 그렇다면 그들과 나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아이들의 ‘수면 패턴’과 엄마의 ‘체력’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도연이는 3살 때까지 잠에 예민했다. 수시로 깨고 재우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낮잠을 자지 않으면 하루를 버티지 못해 재워야 하는데 그 낮잠 때문에 밤잠은 10시 반이 기본이었다. 둘째는 다르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글쎄 더한 애가 나왔다. 손가락이 애착이라서 수시로 손을 찾는다. 특히 19개월인 요즘엔 자아가 생기는 시기라 더 난리다. 고래고래 악을 쓰고 울며 새벽에 깬다. 8시간을 자면 4번을 깬다. 덕분에 내 컨디션은 바닥을 기어다니고 있다… 어쩜 남매 모두 잠에 예민한 내 성향을 닮았는지 가끔 억울하기까지 하다. (하나 더 낳으면…?)

5살이 된 첫째는 확실히 나아졌다. 하지만 기질 자체가 예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른 애들에 비하면 여전하다. 심지어 타고난 체력까지 약하니 2주에 한 번은 병원에 가는 것 같다. 누나가 아프면 둘째도 연달아 아픈 건 애둘집의 국룰. 얼마 전엔 두 아이가 돌아가며 3주 이상 아팠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일을 한다면 어땠을까?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엄마의 체력이 타고났다면 그나마 낫다. 난 딱 그 반대다. 친정엄마와 함께 살고 있지만 하루종일 아이의 병간호를 맡길 수 없다. 타고난 내 체력도 약해 면역력이 떨어지면 피부 염증이 도진다. 설령 내가 워킹맘이었다고 하더라도 이런 상황이라면 결국 난 그리 오래 버티지 못했을 거다.

둘째 아이의 잠투정으로 새벽에 잠 못 이룰 때면 멍하니 앉아 생각하곤 한다. 어떤 성향의 아이가 나에게 주어지는지 그리고 엄마의 체력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아이를 낳은 후의 인생 속도가 달라진다는 것을. 둘째를 낳으면 힘들겠지,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그런데 도통 밤잠을 보장받지 못하니 죽을 맛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아이들 등원 후 뭐라도 해야 하는데, 잠을 못 자 힘든 날은 집중이 되질 않아 속상하다.

주변을 보면 10시간 끄떡없이 자고 체력이 좋아 낮잠을 자지 않고도 잘 버티는 아이들이 있다. 솔직히 정말 부럽다. 유행하는 병이야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잔병치레는 하지 않으니 키우기에 훨씬 수월하다.

워킹맘이 되기에 이미 늦었다면, 조급해하지 말자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아이 탓’으로 모든 걸 돌리고 있다고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힘들지만 기쁨과 보람은 두 배니까. 아이둘이 꽁냥꽁냥 놀고있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힘이 난다. 넷이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의 마음 벅참은 이루말할 수 없다. 다만, 이런 아이들의 성향으로 남들에 비해 시작이 느린 것에 아쉬움이 있을 뿐이다.

난 오늘도 현모양처의 꿈이 마무리되는 그날을 그리며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그리고 날 위해 운동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든다. 지금 당장 이뤄놓은 것은 없지만, 인생 뭐 있나!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내가 결정한 길을 따라 느리지만 꾸준히 갈 거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하루하루의 작은 행동이 모여 언젠가 빛을 발휘할 거라 믿는다.

시아버님이 그랬다. 나 말년에는 운이 좋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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