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단짝친구보다 필요한 건 따로 있다.

유치원 단짝친구 남매가 서로 가장 친한 친구가 되길

내 경험을 겪게 될까 봐 무서운 거야.

초등학교 4학년 왕따를 당한 적이 있다. 여자친구 4명이 함께 놀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나와 놀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왜 나랑 안 놀 건데?”

“너 마음대로만 하잖아. 그래서 이제부터 우리끼리 놀 거야”

집에 돌아와 방문 뒤에서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아마도 엄마한테 이야기하지 않고 스스로 많이 고민했던 것 같다. 내가 뭘 그렇게 마음대로 했는지,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지… 그렇게 며칠 동안 혼자서 학교생활을 했다. 나만 쏙 빼고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게 힘들었다. 결국 난 친구들에게 사과를 했다. 다행히 친구들은 내 사과를 받아줬다.

요즘엔 이런 모습이 초등학교 저학년만 되어도 나타난다고 한다. 여자아이들의 경우 이르면 7살부터라고. 시대가 급변하고 있다지만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까지 이렇게 빨리 배워야 하는 건지 참 씁쓸하다. 4학년 때의 경험 때문일까. 유독 난 도연이의 친구관계에 대한 걱정이 크다. 무리에서 소외되지는 않을지, 미움받진 않을지, 혼자서 튀는 행동은 하지 않을지 등등. 도연이가 이제 5살, 말 그대로 앞선 걱정이다. 의도치 않게 도연이가 친구의 마음을 상하게 한 일이 생기면 오히려 내가 더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어느 날 남편에게 물었다.

“오빠. 난 도연이가 친구 얘기만 해도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 5살이니까 저러는 건 당연한건데 왜 이렇게 예민해지지?

“혼자이면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 그렇지. 도연이가 혼자 놀게 될까 봐 그게 무서운 거잖아. 근데 도연이가 괜찮으면 혼자 노는 것도 나쁘지 않아.”

내 마음을 들킨 듯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유치원 단짝친구 그게 뭐예요?

20대 중반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난 딱히 ‘단짝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친구가 없었다. 그렇다고 학창 시절에 친구가 없었던 건 아니다. 무리 지어 노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런데 뭐랄까. 마음이 맞는 친구가 없었다. 자주 보고 싶고 연락하고 싶은 친구말이다. ‘단짝친구가 없는 것 = 친구가 없는 것 = 외로운 것”이라는 공식은 날 공허하게 만들었다. 마음속에 구멍이 있는 듯 허전했다. 친구와의 약속으로 항상 바빴던 엄마와 언니를 보며 더 그렇게 느꼈다. 단짝친구가 없어도 괜찮다고, 혼자여도 괜찮은 거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인생을 쭉 살다 보니 결국 단짝친구를 만나게 되긴 하더라. 바로 남편이다. 이토록 가치관이 잘 맞고 이야기가 잘 통하는 사람을 남녀 통틀어 만난 적이 없었다. 가족보다 더 잘 통하고 날 이해해 주는 마음에 ‘드디어 나도 이런 사람을 만났구나’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남편은 나와 다르다. 혼자여도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다. 아니, 오히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다. 다른 성향의 남편 덕분에 결혼 후 내 가치관은 많이 바뀌었다. 그리고 내가 변했기 때문인지 아이를 낳은 후로 만난 사람들 중 상당수는 ‘혼자여도 괜찮아. 나도 단짝 없었어~”라고 말한다.

그런데, 아이한테만큼은 이렇게 바뀐 내 가치관이 쉽게 적용되지 않았다. 심지어 같은 여자이다 보니 학창시절의 내 경험을 투영해 도연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난 이제 혼자여도 괜찮은데, 도연이는 혼자이면 안 된다는 이상한 논리를 펼치고 있었다. 혼자이면 외로우니까, 친구 마음을 절대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물건 자랑을 금지하고 친구앞에서는 무조건 밝게 인사하고 친구의 물음에는 꼭 대답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가 커 가면서 자연스럽게 배우게 될 것들조차 나의 앞선 걱정 때문에 선행학습을 시키는 꼴이었다.

이래서 육아가 어려운 것 같다. 아무리 내 가치관이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아이에게는 선뜻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 편한 대로 어렸을 때의 경험을 근거로 생각하고 판단한다. 습관적인 행동이 나온다. 그래서 항상 경계하려고 한다. 하얀 도화지 상태의 아이에게 무언가를 알려줘야 하거나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할 때 그 기준이 지극히 개인적인 것은 아닌지,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만난 단짝친구

얼마 전 유치원에서 돌아온 도연이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엄마, 00가 00한테만 편지 쓰고 나한테는 안 줬어.”

“그래? 에고 00가 왜 그랬을까. 도연이 기분이 어때? 속상해? 아님 괜찮아?”

“나? 음 괜찮아~ 00가 나중에 나한테도 줄 거니까 괜찮아”

“그렇구나 🙂 맞아. 00가 오늘은 그 친구한테 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나 보다. 도연이도 날마다 기분이 다르잖아. 우리 도연이 그렇게 생각할 줄 알고 씩씩하다!”

도연이 대답을 듣고 혼자서도 괜찮은 아이, 씩씩한 아이로 한 걸음씩 잘 성장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내가 도도남매에게 가장 알려주고 싶은 게 바로 이거다. 너가 괜찮으면 잠시 혼자여도 괜찮다는 것.

마음에 맞는 친구를 만나는 것은 아이들마다 속도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내가 20살 중반이 되어서야 그랬듯이 우리 아이들도 각자의 속도에 맞게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날 거라고 믿는다. 그전까지는 이 친구 저 친구를 만나보며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터득했으면 좋겠다. 마음에 맞는 친구가 없다고 속상해할 땐 그 친구와의 관계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주변을 살펴보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재미있게 노는 방법은 무엇일지 함께 고민하고 싶다.

아이들이 건강한 친구관계를 맺도록 집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지 고민했다. 그리고 몇 가지 나만의 규칙을 정했다. 규칙을 정할 때 도움을 받은 영상을 첨부한다. 자녀가 초등학생이라면 나보다 더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

  1. 아이가 이야기하는 건 무엇이든 경청하고 대답해 주기. 사소한 이야기라고 무시하거나 가볍게 여기지 말 것.
  2. 집에서 충분히 부모와의 놀이 시간을 가질 것. 집에서 함께 놀며 규칙을 배우고 협동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놀이에 대한 욕구가 해소되어야 친구와의 놀이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3. 아이가 친구 문제로 속상해할 때 부모가 너무 심각한 분위기로 끌고 가지 않을 것. ‘에이 별거 아냐~ 다른 방법도 있어~”라는 시선을 가질 수 있게 해줄 것.
  4. 부모의 사랑을 듬뿍 표현하고 아이와 함께 감사함을 찾을 것.
  5. 아이가 스스로를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인 ‘자존심’을 잘 길러줄 것.

나만 잘하면 돼.

유치원 입학은 아이들에게 친구와 우정이라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시기다. 설렘과 즐거움이 가득하지만 반면 슬픔과 불안함도 가득하기에 엄마들은 최대한 내 아이가 좋은 감정만 가져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하지만 어디 그럴 수 있나. 슬픔과 불안을 느껴야 설렘과 즐거움을 더 잘 느낄 수 있는 법이다. 친구 때문에 속상해 보기도 하고, 고민도 하고, 울어도 봐야 친구관계에 있어 나의 기준과 가치관이 제대로 세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나만 잘하면 된다. 여자아이를 키우는 이상 친구 문제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 힘듦의 정도 차이는 있을 것이다. 부모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이가 문제를 마주했을 때 조금이라도 덜 힘들어할 수 있도록, 현명하게 헤쳐나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단단한 마음을 길러주는 것뿐이다. 그리고 아이가 힘든 모습을 보였을 때 지나치게 감정이입을 하거나 감정에 휩쓸리지 않도록 엄마인 내 마음도 단단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 같다.

친구관계에서 힘들어 봤던 내 경험을 발판으로 난 도연이를 ‘혼자여도 괜찮은 아이’로 잘 키워낼 수 있다고 믿는다. 4살의 도연이가 현재의 긍정적인 모습으로 변화했듯이 이제 나도 더 단단한 엄마로 변화할 차례다. 나와 도연이를 믿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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