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넘는 인생을 살아오며 이 문제에 대해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2024년 1월 1일부터 일주일간 도연이의 겨울방학이 시작됐다. 유치원 입학 후 처음 맞이하는 겨울방학. 의무 방학 일주일로 타 유치원에 비해 기간이 짧은 편이다. 방학하면 엄마가 더 바쁘다는 말이 있다. 나 역시 아이와의 짧은 겨울방학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방학 일주일 전부터 계획을 세우느라 여념이 없었다. 짧지만 기억에 남을만한 짙은 색깔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이런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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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겨울방학 시작, 좋다 말았다.
내 글을 읽어 온 분들은 도연이가 3살 때부터 변비로 고생해왔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거의 2년 가까이 폴락스산을 꾸준히 먹어왔다. 2023년 5살 여름방학이 지났을 무렵, 이제 서서히 줄여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하루, 이틀 폴락스산을 먹는 텀을 늘렸다. 그리고 드디어! 폴락스산 없이도 2-3일에 한 번씩 도연이 스스로 대변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유치원 입학 후 활동량, 식사량이 늘어나니 자연스럽게 생긴 변화인 것 같았다. 그전에는 먹지 않던 우유와 요거트도 유치원에 다니며 먹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여기에 촉감에 한없이 예민했던 도연이의 변화도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대변을 볼 땐 당연히 힘을 주어야 하고, 아플 수도 있지만 그래야 내가 편해진다는 걸 이제서야 온전히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때가 되면 다 한다는 말이 여지없이 통하는 순간이었다. 너무 기특하고 대견해서 맘껏 칭찬해 줬다.
그런데, 겨울방학 후 평소의 루틴과 다른 생활패턴이 잡히자 도연이의 대변 습관이 꼬이기 시작했다. 방학 후반에 갈수록 아이 컨디션이 떨어지길래 처음엔 감기기가 있나?라고만 생각했다. 영유아 검진차 소아과에 방문했고 진찰을 받아보니 콧물이 살짝 있을 뿐 감기는 아니라고 하셨다.
“아… 이건 화장실 문제겠구나!”
하고 생각이 스쳤다. 화장실에 가지 못한 지 삼 일째가 되자 밥도 거의 먹지 않았다. 아마도 화장실에 가지 못하니 속이 더부룩하고 배가 무거웠을 것이다. 기분 탓인지 얼굴도 점점 누렇게 뜨는 것 같았다😭 도연이도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기분이었을 테다. 나도 몇 개월 만에 아이가 화장실에 가지 못해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답답하고 안쓰러웠다. 이러다 유치원에 갈 때까지 못 가는 건 아닌지 전전긍긍했다.
“밥을 먹으면 속이 울렁울렁거려서 못 먹겠어. 밥만 먹으면 배가 아픈 것 같아”
말을 잘하니 어렸을 땐 하지 않았던 이야기도 하더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집에 폴락스산도 없었다. 이제 다 극복했으니 다시 폴락스산을 볼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키즈카페 약속에서 돌아오는 길 송도 약국에 들러 폴락스산을 샀다. 그리고 그날 저녁 4g짜리 폴락스산 두 포를 먹였다. 얼른 도연이의 속이 편해지길 바랐다.
“엄마 배 아파. 화장실 갈래~”
“정말? 경사 났네 경사 났어! 얼른 가자 얼른!”
“(방긋 웃는 도연이) 헤헤. 응 나 이불 좀 갖고 올게 :)”
다음날 아침, 아침밥을 먹은 후 도연이에게서 들려온 희소식. 애착이불을 들고 화장실로 가는 도연이가 어찌나 예뻐 보이던지.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유아 변비약 감기약만큼 중요한 비상약
이게 벌써 3일 전 일이다. 즉 이날 이후 3일 동안 깜깜무소식이라는 것. 3일 동안 꼬박꼬박 아침마다 폴락스산을 먹이고 있는데도 소식이 없다. 폴락스산 2년을 먹은 기간보다 일주일 방학의 힘이 더 강력했다는 것에 참 허무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시행착오를 겪었기 때문에 덤덤하게 도연이를 바라볼 수 있다는 거다. 꾸준히 먹이면 언젠가 가겠지라는 느긋한 태도를 가질 수 있게 됐다.작년 여름, 도연이 변비로 다녔던 소아과 의사선생님의 권유로 삼성병원 최연호 교수님을 뵌 적이 있다. 그날 이후 유아 변비에 대해 내가 얼마나 협소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만약 나처럼 아이 변비로 고민 중인 분이 있다면 꼭 추천하고 싶은 영상이다.
이번 일을 통해 깨달은 게 또 하나 있다. 도연이는 루틴이 참 중요한 아이라는 거다. 유치원 등원 후 아침 간식을 먹고, 아이들과 뛰어놀고, 영양소 가득한 점심을 먹는다. 다양한 수업을 듣고 오후 간식을 먹고 하원하는 일련의 과정이 도연이에게는 단순한 생활 패턴이 아니다. 아이의 건강과 하루 컨디션에도 직결되는 일이 되어버렸다. 금요일만 되면 피곤함에 다크서클이 턱밑까지 내려오지만 마냥 퍼져있을 수만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너도 피곤하게 살아야 할 운명인 거니…?) 엄마인 내가 식판에 알록달록 반찬을 채워 넣어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다시 정상 루틴으로 되돌아오면 폴락스산을 중단할 계획이다.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예전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묵묵히 도연이를 믿고 기다려주는 게 오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도 조금의 바람이 있다면… 그 시간이 오래 걸리질 않기를. 그리고 6살 여름방학엔 좀 더 체계적으로 계획을 세워야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