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딸이라고 다 똑같지 않습니다.

예민한딸_6살이된 도연이

넌 아기때부터 예민했지. 예민해서 힘들잖아. 그렇게 예민해서 어떻게 살래?

어렸을 때 정말 많이 듣던 말. 아기였을 땐 잠을 자지 않아 엄마를 고생시켰고 약한 체력으로 구내염을 달고 살았다. 많이 우니 체력이 떨어지고 그래서 구내염이 낫질 못하는 그야말로 악순환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쯤부터는 비염 + 손 피부 습진으로 고생했다. 내 몸은 공기의 변화를 참 얄궂게도 빠르게 알아차렸다. 이내 콧물, 눈물이 터지고 귀와 입안의 간지러움이 날 괴롭혔다. 그래서 명절이 되어 시골에 내려가는 게 반갑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피부 습진은 말해 뭐 할까. 긁고 나면 아플 게 분명한데 당장의 가려움을 참는 건 정말 곤욕스러웠다. 있는 힘껏 간지러움을 참아내면 누군가 내 에너지를 몽땅 빼앗아가는 느낌이었다. 몸 상태가 이러하니 몸의 신호에 더 예민해졌던 것 같다. 기질적으로 타고난 예민함에 몸으로 인한 예민함이 더해진 거다.

예민함만 있었던 건 아니다. 유독 난 시간약속, 사회적 규범에 매우 까다로웠다. 약속 시간에 5분이라도 늦는 친구는 상대방에 대한 매너가 없는 거라고 쉽게 판단했다. 특히 지금의 남편과는 이 부분 때문에 연애시절 많이 다퉜다. 회사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늦는 건데 당시의 난 그걸 받아들이는 게 힘들었다. 늦으면 불같이 화를 냈고 서운함을 내비쳤다. 이 외에도 돌고 돌아 택시비가 많이 나왔을 때, 불친절한 직원을 만났을 때, 새치기를 할 때 등 마땅히 지켜야 할 규범들을 누군가 지키지 않으면 감정적으로 상당히 힘들었다.

다행히 비염과 피부 습진은 모두 20대 후반이 되니 사라졌다. 나이가 들면 체질이 바뀐다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까다로운 부분도 아이를 낳고 키우며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어렸을 때보다 수용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졌다. 그런데 참 희한하다. 이렇게 예민하고 까다로운 나였지만 새로운 환경에서의 적응은 빨랐다. 학창 시절 낯을 가리지 않아 새로운 친구와 금세 친해졌다. 예민하지만 변화를 좋아해 새로운 음식을 먹고 장소에 가는 걸 즐겼다.

예민한딸의 변화

예민하다고 해서 모두가 다 똑같은 기질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아이를 예민한, 까다로운 아이 딱 한 단어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날 닮아 예민하고 까다로운 도연이. 4살까지만 해도 ‘예민해서 그래’라고 퉁쳐서(?) 설명할 수 있었던 일들이 5살이 되자 많이 바뀌었다. 여전히 예민하기 때문에 잠자리를 가리고 얼굴과 손에 로션 바르는 걸 싫어한다. 옷의 시보리가 팔목을 조이거나 상표가 피부에 닿는 것도 싫어한다. 또 특정 목소리와 음에 두려움을 느낀다. 하지만 예민한데도 낯선 환경에 적응이 빠르고 새로운 변화를 좋아한다. 즉 예민하지만 흔히 ‘예민한 아이’들이 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경우도 많은 거다.

아마도 도연이는 나처럼 몸의 신호에 예민한 아이라고 생각한다. 몸이 느끼는 불편함을 금방 알아차리기 때문에 잠, 로션, 땀, 눈부심, 뜨거움 등에 예민한 거다. 그러나 이렇게 직접적인 몸의 감각을 건드리는 게 아니라면 예민한 아이 치고는 관대하다. 낯선 사람과 분위기, 음식과 물건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분명 과감한 부분이 존재한다. 예민한데 과감하다. 예민한데 도전적이다.

자극을 받았을 때 반응은 어떤가요?

도연이는 일반적으로 자극을 받았을 때 보이는 반응 강도가 크지 않다. 만약 친구가 본인 물건을 빼앗아 가거나 새치기를 해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무던한 편이다. 오히려 양보하는 게 본인 마음이 편하다고 이야기한다. 단, 정말 본인이 싫어하는 자극이라면 반응이 크다. 로션을 바르다가 입술이나 손톱에 묻으면 소리를 지르며 짜증을 낸다. 내 손을 잡고 심호흡을 해야하고 10분 이상 옷을 입지 않고 몸의 로션이 모두 흡수되길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햇빛과 더위에 약해서 무더운 여름, 햇빛이 쨍쨍 내리쬐면 금세 지치고 예민해진다.

즉 예민한 아이라고 해서 반응 강도가 무조건 높은 건 아니라고 이해할 수 있다. 반대로 예민한 아이라고 해서 모두 반응 강도가 약하게 나타나는 것만도 아니다. 그 이유는 뭘까? 아이의 기질이란 건 단순히 ‘예민하다’이 한마디로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 지니킴님의 책 회복탄력성에서는 아이의 기질을 결정하는 특성을 9가지로 나눈다. 활동성, 규칙성, 회피성, 반응성, 반응강도 등등. 여기에서 말하는 9가지 특성이 상호보완 작용을 하기 때문에 예민하지만 아이들마다 서로 다른 특성을 보이는 거다.

만약 도연이처럼 특정 부분에서만 예민함을 드러내고 높은 반응 강도를 보인다면 사회활동을 하는 데 전혀 문제 될 건 없다. 그러나 반대로 생활 전반에서 예민함을 드러내고 반응 강도도 높다면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9가지 특성에 대해서는 책 ‘회복탄력성 p79를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예민한 내 아이에 대해 더 잘 알고 싶다면 회복탄력성 책을 꼭 읽어보길 권한다. 혹은 위의 영상을 참고해도 좋다.

예민한딸이라서 오히려 난 좋아.

예민한딸_회복탄력성 책

‘결국 해내는 아이는 정서지능이 다릅니다’의 저자 김소영님과 ‘회복탄력성’의 저자 지니킴님의 라이브가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 예민하고 까다로운 아이일수록 아이의 기질을 섬세하게 알아야 찰떡같은 육아가 가능하다는 말이 와닿았다. 어떤 아이든 예민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내 아이가 예민한 부분이 조금 더 많을 뿐이다. 그리고 예민하기 때문에 장점으로 느껴지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도연이는 눈치가 빠르고, 몸을 깨끗하게 단장하고, 음악을 좋아하고,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쓸 때 섬세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난 앞으로도 도연이가 기질적으로 타고난 성향까지 사랑하며 편안한 삶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옆에서 응원할 것이다.’예민해서 힘들어’가 아닌 ‘예민해서 잘됐어’라는 말을 웃으면서 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바란다. 남들보다 조금 더 예민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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