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아 미디어 오늘도 난 티비를 보여준다.

영유아 미디어_아기유튜브언제부터

아이를 낳으면 최대한 티비는 보여주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책으로 둘러싸인 거실에서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고 책육아를 하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그런 나는 이제 5살 2살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었다. 인생은 생각하는대로 흘러간다는데, 내가 상상한 것처럼 육아를 하고 있을까?

모두가 예상했듯 아니다. 상상과 현실은 달랐다. 5살 2살 남매를 키우고 있는 우리집의 티비 시청 시간은 평일 기준 1시간 30분 정도다. 등원 전 30분, 그리고 하원 후 1시간. 독박 육아를 하거나 집콕하는 주말이면 시간은 더 늘어난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야기한다. 티비는 아이의 뇌, 집중력, 언어발달에 치명적이라고. 미디어에서 흘러나오는 이런 정보에 죄책감을 느낀 적도 많다. 내가 편하자고 아이의 발달을 지연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 이러다가 애착 형성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닌지 등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깊어졌다.

그렇다면 이렇게 쭉 생활해 온 도연이의 발달 상황은 어떨까? 전문가들의 말대로라면 언어가 늦고 집중력이 좋지 않고 어딘가 덜떨어진 부분이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딱 그 반대다. 세 살 때 일을 이야기할 만큼 기억력이 매우 좋다. 1시간이 넘는 영화를 쭉 앉아볼 만큼 엉덩이가 무겁다. 그리고 책 읽기를 좋아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유치원에서의 친구관계도 나쁘지 않다.

매일 1시간~1시간 30분씩 미디어를 접하는데도 발달에 문제가 없는 이유는 뭘까? 특별한 비결이 있는 건 아니지만, 굳이 꼽아보자면 바로 ‘엄마의 집중력’이라고 생각한다.

영유아 미디어 시청기준, 이상을 좇다가 내가 죽겠다.

나도 도연이가 아주 어렸을 때는 이상적인 방법대로 육아를 하려고 노력했다. 미디어를 제한하고, 되도록 밖에 나가서 놀고, 책도 아이가 원하는 대로 무한정 읽어주고, 몸놀이를 하고… 말도 못 하는 아이를 앞에 두고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해서 머리가 띵한 날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날들이 계속되다 보니 내가 못 견디겠더라. 번아웃이 왔다. 둘째를 임신하니 더 힘들었다. 아무리 부부가 좋아서 낳은 아이지만 내 피로함을 무시한 채 계속 똑같은 방식으로 육아를 할 수는 없었다. 육아도 즐거워야 시간이 잘 간단 말이다!!

물론 여전히 두 돌 이전의 아이에게는 미디어 노출을 제한해야 한다는데 적극 찬성한다. 그리고 두 돌이 지나도 할 수만 있다면 미디어를 최대한 제한하고 부모와의 시간을 갖는 게 맞다. 그러나 사람은 저마다 타고난 체력의 그릇이 다르다. 난 소위 말하는 저질체력이다. 피곤이 쌓이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간지러움과 싸워야 하는 피부 습진이 도진다. 입안에는 구내염이 생긴다.

이런 자질구레한 병쯤이야 의지 문제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굳게 마음을 먹고 이겨내자 생각했다. 꾸준히 운동도 했다. 그래서 이겨냈냐고? 결국 앓아누웠다. 한약을 두 달 먹고 회복했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은 셈이다. 이런 루틴이 몇 번 반복되고 나서야 깊이 깨달았다. 억울하지만 타고난 그릇을 인정하고 평소 생활에서 ‘에너지 게이지’를 잘 관리하는 게 남는 거라고. (에너지 게이지란 단어에 대해 처음 접한다면 아래의 영상을 참고하면 좋다.)

육아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모노드라마를 찍듯 혼자서 떠들어야 한다. 아이의 주문에 맞춰 엉덩이 가볍게 움직여야 한다. 번개 파워 놀이를 해야 하고 줄다리기도 해야 한다. 즉 내 기분에 상관없이 아이의 텐션에 맞춰 놀아야 한다. 아이가 크면서 함께 늘어나는 짜증을 받아줘야 하고 때로는 구슬리며 설득도 시켜야 한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의식주를 다 챙겨야 하니 아이와 하루 종일 함께 보낸 날 밤에는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진다. 그런데 엄마의 에너지 게이지는 제쳐두고 아이의 발달만 생각해 미디어를 멀리하라고? 난 못하겠다. 태생부터 그렇지 못하다.

저질체력 엄마의 미디어 시청 기준

이제 난 더이상 육아전문가들이 말하는 방법대로 이상적인 육아를 하지 못했다고 좌절하지 않는다. 분명 나 같은 사람도 있을 테니까. 세상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저질 체력이 설마 나 하나일까. 그러나, 미디어를 보여주는 대신 꼭 지키는 나만의 룰이 있다.

첫 번째, 미디어를 보지 않는 시간에는 ‘집중력’있게 아이와 놀아줄 것. 두 번째, 집에서 정한 시청 규칙을 지킬 것.

이다. 유치원에 다니는 평일에는 하원 후 저녁 식사를 하기 전까지 아이가 원하는 놀이에 집중한다. 그게 무엇이든 위험하지만 않다면 괜찮다. 5살 도연이가 요즘에 꽂힌 놀이는 축구(라 부르고 공차기라 한다.), 테니스 놀이다. 그래서 땀이 뻘뻘 나도록 함께 부대끼며 논다. 덩달아 둘째도 신나서 꺅꺅 소리 지르며 쫓아다닌다 🙂 이렇게 한 시간쯤 놀고 목욕하고 저녁을 먹은 후 티비를 본다. 주말 계획은 평일에 미리 검색해서 세워둔다. 요즘처럼 날씨가 좋은 계절엔 어디서든 놀 수 있으니 참 좋다.

아래는 우리집에서 지키는 미디어 시청 규칙이다. 아이들의 장난감 구매 욕구를 자극하거나 나이에 맞지 않게 성숙한 내용의 영상은 절대 틀지 않는다.

  • 아침 등원 전 30분 티비는 무조건 EBS로 본다.
  • 하원 후 목욕, 저녁식사까지 마친 후 1시간 이내로 티브이 시청.
  • 티비 채널 선택의 주도권은 부모에게 있다.
  • 리모컨은 절대 아이에게 주지 않는다.
  • 수시로 채널 변경은 절대 하지 않는다. 한 번 튼 영상은 재미가 있든 없든 끝까지 봐야 한다.
  • 주말에도 유튜브는 무조건 저녁에만 본다. 나머지 시간에는 영화 혹은 뽀요티비, 혹은 넷플릭스 영상으로 대체한다.
  • 아이가 위의 규칙대로 하지 않을 땐 내가 힘들어도 어쩔 수 없다. 그날 티비는 틀지 않는다.

영상을 잘 활용하면 관심분야에 대한 지식이 늘어나고 여러 상황에 대한 대응능력을 높일 수 있다. 실제로 도연이는 주니토니, 톰토미 노래를 들으며 사람의 몸과 곤충, 공룡, 동물 등에 대한 지식을 쌓았다. 대변에 대한 거부감도 심했는데 영상을 보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영상에서 접한 지식의 연장선으로 책을 읽어주면 더 깊게 관심을 갖는다. 그리고 ‘달님이’나 ‘똘똘이’ 등의 영상을 보고 실제 일어날 수 있는 에피소드에 대해 미리 생각해 보고 예습을 할 수도 있다.

이렇게 규칙을 세워두었는데도 에너지 게이지에 빨간불이 들어올 만큼 지치는 날이 있다. 그럴 땐 아이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아빠와 시간을 보내기를 부탁한다. (둘 다 엄마 껌딱지…) ‘엄마엄마’노래를 부르는 아이들과 함께하지 못함에 죄책감을 느끼는 나를 보고 어느 날 남편이 말하더라.

“매일도 아니고 어쩌다 하루 이렇게 패턴이 무너진다고 해서 아이들이 잘못되는 거 아냐. 우리가 그동안 쌓아온 게 있는데! 우리가 즐거워야 아이들도 즐거운 거야. 그러니 죄책감 갖지 말고 편히 쉬어”

만약 나처럼 저질 체력인데 아이들 미디어 시청으로 고민 중인 엄마가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아이들 발달 못지않게 중요한 게 엄마의 ‘에너지 게이지’라고 말이다. 엄마가 체력관리를 못해 무너지면 그때가 더 위험하다. 내 욕심으로 주위 사람들을 더 힘들게 할 수 있다. 그러니 평소에 미디어를 보여준다고 죄책감을 갖지 말자. 본인만의 확고한 기준을 세우고 보여준다면 미디어가 아이들에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1 Comments

  1. 일단 엄마가 살고 봐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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