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이러시면 안 돼요. 도준이 보내주시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해요.”
“에이 선생님 그래도 이왕 산 거니까 받아주세요~ 제 마음이에요!”
“안돼요 절대 안 돼요. 마음만 주세요. 이제 모든 어머님들한테 이런 거 받지 않기로 했어요. 정말 죄송해요 :)”
올해 5월, 스승의 날 2살 도준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 선생님들이 나눠드실 수 있는 도넛을 사갔을 때의 일이다. 완강히 거부하시기에 나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첫째 도연이 때는 이렇게까지 하시지는 않았는데, 올해 들어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으신 건지… 결국 도넛은 다시 내 손에 쥐어졌고 가족들끼리 맛있게 나눠먹었다.
추석이 다가오니 역시나 맘카페에는 어린이집 추석선물, 유치원 추석선물에 관한 글이 많이 올라온다. 첫째 도연이 땐 나도 그랬다. 이벤트가 있는 몇 주 전부터 맘카페를 기웃거리며 어떤 선물이 좋을지 고민했다. 어린이집 가정통신문에 ‘선물을 받지 않습니다’라는 이야기는 읽었는데 정말 하지 않아도 괜찮을지, 괜히 그냥 넘어갔다가 우리 아이만 밑 보이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난 어린이집에 다니는 2년 동안 담임 선생님에게는 케이크, 프랜차이즈 카페의 기프티콘을 드렸다. 다른 선생님들은 함께 나눠드실 수 있도록 롤케이크나 떡 등 간식을 선물했다. 물론 내가 보낸 선물 때문에 아이를 더 신경 써주셨거나 특별히 아껴주셨던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도 안되고. 그냥 내 마음이 편했다. 공짜로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도 아닌데 괜한 나의 찝찝함을 지우고자 선물을 드렸다.
이번 어린이집 추석선물은 하지 않기로 했다.
얼마 전 도준이 어린이집 친구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언니, 선생님들한테 추석선물 뭐 할 거예요?”
” 아~ 나 안 드릴 거야. 지난 스승의 날에도 드렸더니 안 받으시더라고… 그냥 나중에 애들 간식할 수 있게 과일이나 약과 같은 거 사 가려고! “
이렇게 대답했다. 스승의 날을 계기로 나 역시 마음이 바뀌었다. 사실 선물을 챙기려면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설날, 추석, 스승의 날, 수료식 날까지 1년에 총 4번, 담임선생님에 원장 선생님까지 챙기면 족히 7-8만 원은 든다. 평소 전하지 못했던 감사함을 전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건 맞다. 하지만 이게 꼭 ‘그럴듯한 선물’이어야 하는 법은 없지 않을까. 아이를 공짜로 기관에 보내는 것도 아닌데 돈을 써야 마음이 놓이는 습관은 내려놓기로 했다.
물론 나처럼 이런 마음을 갖기 전에 확인해 봐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기관의 분위기’다. 아주 다행히(?)도 두 남매가 다니는 어린이집, 유치원은 모두 선물은 일절 받지 않겠다는 원장 선생님들의 마음이 확고하시다. 도연이 유치원에서도 어떤 학부모가 가져간 간식을 그대로 돌려주는 걸 실제로 봤다. 그러나 모든 기관이 이렇지는 않다. 선물을 드리는 게 공공연하게 당연시되어있는 곳도 많다. 아이를 처음 기관에 보내서 잘 모르겠다면 등하원길에 만나는 선배 엄마들에게 은근슬쩍 물어보는 걸 추천한다. 엄마들의 입에서 ‘저는 하고 있어요’라는 말이 나온다면 작은 선물이라도 보내는 게 좋다. 혹은 가정통신문에 아무런 이야기가 쓰여있지 않다면 챙겨서 나쁠 건 없다.
어린이집 추석선물 삐뚤빼뚤하지만 괜찮아.
스타벅스 기프트카드는 어린이집, 유치원 추석선물로 꽤나 인기가 좋다. 유명 브랜드에 맛까지 보장되니 안전빵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안전빵인 선물이 있다. 바로 아이와 함께 만든 ‘마음 기프트 카드’다. 친구가 알려준 방법인데 너무 괜찮아서 당장 추석에 나도 활용해 보기로 했다.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먼저 스케치북이나 종이 위에 엄마가 연필로 큼직하게 글씨를 쓴다. 어떤 내용이든 괜찮지만 너무 길지 않은 게 좋다. 선생님 감사해요, 선생님 사랑해요, 선생님 명절 잘 보내세요 등등이 있다. 그 후 아이가 사인펜이나 색연필로 엄마가 쓴 연필 자국을 따라 글씨를 쓴다. 아이가 다 쓰면 연필 자국은 지우개로 지운다. 그럼 아이가 쓴 글씨만 종이에 남는다. 삐뚤빼뚤하지만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쓴 글씨 주변에 아이가 좋아하는 스티커를 붙이고 그림을 그린다. 편지 마지막에는 항상 아이를 잘 돌봐주셔서 감사하다는 엄마의 메시지를 담으면 좋다.
카드만으로는 영 마음에 차지 않는다면 핸드크림이나 립밤, 초콜릿 등 작은 선물을 함께 넣는 것도 방법이다. 스타벅스 기프트카드, 온라인 기프티콘, 쿠키 등 뭐든 돈으로 마음을 대체하는 시대일수록 이런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받는 이의 마음을 더 따뜻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도연이는 종종 초콜릿, 작은 빵, 귤 등을 선생님한테 갖다 드리고 싶다며 가방에 넣어서 등원하곤 한다. 본인이 편지를 쓰지는 못하니, 엄마가 대신 ‘선생님 사랑해요’를 쓰라며 시킬 때도 있다 🙂 얼마 전 2학기 유치원 상담에 다녀왔는데 도연이의 이런 행동들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며 칭찬해 주셨다. 엄마와 함께하는 이런 시간은 아이가 고마운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달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내가 이렇게 내 기준을 정했듯이 명절 선물을 하는데도 엄마 본인의 기준을 정하는 게 중요하다. 선물을 주고받는 분위기가 형성된 기관이라면 합리적인 금액대를 정하고 평소 본인의 스타일대로 선물을 고르면 된다. 스타벅스 기프트 카드여도 좋고 핸드크림이어도 괜찮다. 선물의 금액은 전혀 상관없다. 명절 선물을 챙기는 이유는 아이를 돌봐주시는 ‘감사함’임을 잊지 말자. 반대로 선물을 반겨 하지 않는 기관이라면 쿨하게 하지 않아도 된다. 선생님들에게는 항상 감사하지만 선물은 하지 않는 나처럼… 선물보다 중요한 건 아이가 얼마나 즐겁게 기관에 다니는지다. 아이가 웃는 얼굴로 등원할 수 있게 잘 도와주는 부모가 선생님들에게는 최고의 선물일지 모른다.
유튜브에서 발견한 좋은 영상이 있어 공유한다. 추석 기념으로 아이와 함께 특별한 만들기 시간을 가질 때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어린이집 추석선물로 고민중인 부모님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