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자존감 높이기 위한 방법 좀 알려줘.
“언니. 우리 첫째 딸 올해 학교 들어갔잖아. 근데 얼마 전에 선생님한테 충격적인 이야기 들었어…”
“엥? 충격적인 이야기? 뭔데?”
8살 딸을 둔 친한 동생의 고민 상담 호출에 두 아이를 등원시키고 집 근처 스타벅스에서 만났다. 아침이면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가을인데 동생은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원하게도 마셨다.
“OO이가 자존감이 낮대. 그래서 학교 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어떻겠냐고 하시더라고… 자기 비하를 잘 하고 뭐 그렇대…”
“정말? 그 소리 듣고 놀랐겠다야. 나 같아도 그런 이야기 들으면 마음이 좀 그랬을 거야.”
“언니는 혹시 도연이 자존감 키워주려고 특별하게 뭐해 주고 그래? 어젯밤에 유튜브에서 자존감 높아지는 방법 찾아본다고 눈 빠질 뻔했잖아 ㅎㅎ”
갑작스러운 질문에 머릿속 이야기가 뱅뱅 꼬여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질 않았다. “무한한 사랑과 칭찬?”이라고 대답했는데 구체적인 답을 주지 못한 것 같아 집으로 돌아와 꽤 오랫동안 속상했다. 그리고 고민해 봤다. 어떻게 하면 아이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을까?
“넌 자존감이 낮아서 그래”
‘자존감’이라는 단어는 요즘 엄마들 사이에서 뜨겁다. 친구 간의 갈등, 성적 문제, 아이의 성격 등 요즘엔 뭐든 자존감과 엮는다. 원만한 교우관계, 자기주도학습, 성공적인 미래를 위해서 자존감은 필수 조건이라고 한다. 마치 자존감이 만병통치약이 된 듯.
“이 글을 읽는 당신은 혹시 자존감, 자존심, 자신감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나요?”
자신감, 자존심 그리고 자존감
자존감이라는 단어와 항상 붙어 다니는 단짝 같은 친구가 바로 자존심과 자신감이다. 난 이 세 가지 단어를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박종윤님의 인스타 라방을 보기 전까지는. 박종윤님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내가 너무 좋아하는 오은환 대표님을 통해 알게 된 컨설팅 전문가다. ‘내 운명은 고객이 결정한다’의 작가이기도 하다.
박종윤님의 인스타 피드를 천천히 둘러보고 있는데 ‘자아실현’에 대한 라방을 한다는 공지를 발견했다. 평소 같았으면 둘째 때문에 또 새벽에 언제 깰지 모르니 자러 가자 했을 텐데 그날따라 피곤을 이겨내고 라방에 들어가 보고 싶었다. 뭔가 ‘끌림’이 있었나 보다.
라방을 보지 않았으면 어쩔 뻔! 박종윤님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했다. 그리고 자신감, 자존심, 자존감에 대한 개념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존심과 자존감의 차이를 ‘시선의 방향’이라고 설명한다. 타인을 신경 쓰는 것은 자존심, 오로지 나를 위함은 자존감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박종윤님은 달랐다. 남들과는 다른 시선으로 자존심과 자존감을 풀어내셨지만 명쾌했다. 이제부터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을 참고해 내 의견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
박종윤님은 자신감, 자존심, 자존감은 모두 다른 의미라고 말한다. 자신감이란 난 할 수 있다는 믿음,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다. 자존심은 자존(自尊),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이자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본인을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함부로 남을 대하지 않으며 남이 나를 함부로 대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 남과 비교하며 본인을 갉아먹거나 남에게 의지해 본인을 무쓸모의 인간으로 만들지 않는다.
박종윤님은 자존감이 있기 전에 사람이라면 누구나 응당 갖고 태어나는 능력인 자신감과 자존심이 먼저라고 말한다. 제로베이스에서 부모의 노력으로 길러지는 힘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난 이 두 가지 힘이 제대로 발현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부모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렸을 땐 자신감과 자존심을 길러주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본다. 제대로 된 자신감과 자존심을 장착한 아이는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계기를 자연스럽게 만날 가능성이 많다. 두 능력이 자존감의 뿌리가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자신감과 자존심을 길러주기 위해 부모는 뭘 해줄 수 있을까?
아이 자존감 높이기 전에 이것부터.
아이의 자신감은 부모의 구체적인 칭찬에서 자라고 자존심은 고유성을 인정한 믿음과 사랑을 먹고 자란다고 생각한다.
이미 아이에게 이렇게 실천하고 있는 부모에게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라 이게 솔루션이 될까 싶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은근히 많다. 두루뭉술한 칭찬을 하는 부모들을 예로 들 수 있다. 잘했어, 훌륭해, 대단해 등의 단어만 반복적으로 사용해 칭찬하는 경우다. 혹은 기계적으로 과한 칭찬을 하는 경우도 해당한다. 물론 칭찬에 인색한 것보다야 백 번 낫다. 그러나 칭찬할 거면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하자는 거다. 유치원에서 색칠공부를 해 온 도연이가 나에게 그림을 보여준다. 그럼 난 아이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와 정말 다양한 색깔로 토끼를 색칠했네! 예쁘다 :)”
“어제보다 더 꼼꼼하게 색칠했네? 잘했어…!”
“오늘은 어제보다 더 많이 색칠해 왔네? 더 집중해서 그렸나 보네! 잘했어 :)”
어떤 부분에서 잘 했는지 칭찬을 해 주면 아이는 그 분야에 대한 자신감이 쌓인다. 더 잘 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생긴다. 그래서 또 다른 도전, 시도를 하게 된다. 놀이터에서 놀 때도 마찬가지다. 도연이가 전에는 올라가지 못했던 놀이 기구에 스스로 올라가고 있다.
“도연아. 조금씩 조금씩 연습하더니 결국 스스로 올라갔구나. 대견해!”
“이거 봐. 엄마가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은 없다고 했잖아. 결국 해냈어. 잘했어!”
“오늘은 도와달라는 말없이 용기 내서 스스로 해봤네? 잘했어! 올라가다가 어려우면 말해. 그때 도와줄게!”
이런 식으로 결과가 아닌 과정과 노력을 칭찬하는 편이다. 물론 나도 사람인지라 힘들 땐 단순한 말들로 끝내버릴 때도 있지만… 10번 중 절반 이상은 실천하려고 한다. 아이에게 구체적인 칭찬을 하는 데 익숙하지 않고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면 아래의 영상을 보는 걸 추천한다 🙂 나도 보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주변을 살펴보면 자신감은 높지만 남과의 비교를 통해 본인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는 아이들이 있다. 끊임없이 남과 경쟁하는 유형이다.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는 힘인 자존심이 낮은 아이들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이런 아이들은 무한한 칭찬 속에 성취감을 느끼며 자랐지만 마음속 ‘구멍’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구멍이 생긴 이유는? 조심스레 추측해 보건대 칭찬은 있었지만, 아이를 인정하는 부모의 믿음과 사랑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닐까…
제대로 된 자존심을 길러주기 위해서 부모는 가장 먼저 아이의 ‘아이다움, 고유함’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위에 믿음과 사랑을 표현해야 한다. 아이의 선택이 내 기준과 다르다고, 혹은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어떤 부분에서 유별나다고 해서 절대 비난해서는 안 된다. 가장 가까운 가족조차 아이의 고유함을 인정하지 않는데 어떻게 아이가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길 수 있을까.
획일적인 공교육 아래에서 자란 (80년대 후반 태생) 나만 해도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하는 데 꽤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용기 있게 선택을 해도 ‘이 선택이 올바른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자기검열을 한다. 그래서 난 항상 날 경계한다. 아이의 선택에 섣불리 간섭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내 주장을 주입시키려고 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하고.
아이의 고유성을 인정한 후 표현하는 믿음과 사랑은 아이의 자존심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너의 선택이 무엇이든 엄마는 널 믿고 사랑한다’라는 이 말은 아이를 더 단단하게 만들 확률이 높다.
너 자신이 되어라.
자신감, 자존심을 거쳐 이제 자존감이다. 박종윤님은 자존감은 자신감, 자존심과는 달리 필요에 의해 생겨나는 영역이라고 설명한다. 본인이 속한 집단, 사회 속에서 내가 필요한 존재임을 느꼈을 때 생겨나는 감정인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인정 속에서 생겨나는 감정이기 때문에 부모가 길러준다고 해서 키워지는 감정이 아닌 거다. 이 이야기를 듣고는 처음엔 참 허무했다. 자존감 키우기에 좋다는 방법들을 찾아 SNS와 책들을 찾아다녔는데 결국 얻어낸 답이 이거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오히려 잘 됐다 싶었다. 이쯤에서 내가 위에서 쓴 내용을 한 번 더 이야기하고 싶다.
“어렸을 때는 자신감과 자존심을 제대로 길러주면 자존감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확률이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박종윤님의 이야기를 정리해 보면 피라미드처럼 가장 밑바닥에는 자신감, 그 위에는 자존심, 그리고 가장 꼭대기에 자존감이 존재한다. 부모인 난 자존감이 아닌 자신감과 자존심만 잘 길러주면 되는 거다.
아이의 반짝이는 자신감과 자존심을 알아 본 누군가는 우리 아이에게 신뢰감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마음속에 각인된 신뢰감을 바탕으로 결국 어떤 순간에 우리 아이를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마치 ‘이건 걔가 잘 할 것 같아~’처럼. 누군가가 본인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느낌을 받은 아이는 자연스럽게 자존감이 올라가게 된다. 만약 가까운 미래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자신감과 자존심이 충만하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을지 고민을 끊임없이 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어딘가에 필요한 존재라는 믿음을 가지고 노력하며 살아갈 것이다.
난 우리 아이들이 특출나게 공부를 잘 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더 많은 선택지를 위해 좋은 성적이 필요한 건 맞지만 그게 아이들을 불행하게 만든다면 굳이 강요하고 싶지 않다. 물론 학생으로서의 기본은 해야겠지만 말이다. 대신 스스로를 믿고 ‘나다움’을 발견해 나가는 노력은 게을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모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의 선택을 믿고 지지하는 것, 아이를 비난하지 않는 것, 아이와 다양한 경험을 하고 사랑을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이 글을 읽는 분들이 더 이상 ‘자존감’이라는 단어 자체에 매료되어 중요한 것들을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는 책의 한 문장을 나누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