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정답일 거라는 착각.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육아 전문가들의 이야기, 많은 육아 서적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아이 키우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막상 아이를 낳고 키워보니 이론과는 다른 결과에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수면교육이 그랬다. 5살 첫째와 20개월 둘째를 키우고 있는 난 남매 모두 수면교육을 하지 않았다. 아니, 수면교육에 실패했다고 해야하나… 그래서 아이 둘을 키운다는 이유로 나에게 ‘수면교육 팁’을 알려달라는 연락을 받으면 참 곤란하다.
“다운아, 나 좀 살려줘. OO이가 11시에 깨서는 지금까지(새벽1시)까지 안 자고 논다… 아니 몇 달째 이런 패턴이니까 미치겠어. 이런 말 하면 안되는데 애를 왜 던지는지 알 것 같다니까. 수면교육하면 좀 나아지려나?“
6개월 아기를 키우고 있는 친구한테 카톡이 왔다. 잠에 예민한 아이를 키워본 입장에서 친구의 힘든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고문 중에서도 잠 못자게 하는 고문이 가장 고통스럽다고 한다. 아이때문에 잠을 못잘 땐 딱 그 마음이다. 미친X처럼 소리 지르고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울컥울컥 올라온다. 아이를 토닥인다는 핑계로 감정을 실어 엉덩이를 때릴 때도 있다. (이러고 미안하다고 운다…) 이런 내가 친구한테 해줄 수 있는 말은 별로 없었다.
“잠 못자는 거 진짜 힘들어… 나도 알아. 사람 미치게 해. 근데 수면교육은 나도 실패한 사람이라 딱히 해줄 말이 없다. 근데 난 그거 못 하겠더라고. 40분까지 울려봤거든? 난 그거 못 보겠어서 포기했어. 너도 한 번 해 봐. 의외로 통할 수도 있고! 너무 힘들면 그냥 포기하면 되니까.”
전문가들은 아이의 성장과 엄마의 육아 컨디션을 위해 수면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나도 동의한다. 그런데, 모든 부모와 아이에게 ‘수면교육’이 통할 수 있는 걸까? 생채소를 먹는 게 채소의 영양을 섭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하지만 체질상 생으로 채소를 먹으면 소화가 잘 되지 않아 힘든 사람이 있다. 이렇듯 수면교육이라는 것도 모든 부모와 아이에게 맞는 방법이라고 일반화 시키기에는 조금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난 잠에 정말 예민한 아이였다고 한다. 두돌이 지날 때까지 우리 엄마는 날 업어서 재웠다. 세살 때까지 밤에 수시로 깨며 칭얼거렸다. 제법 말을 할 줄 아는 네살이 되었을 땐 아침에 일어나 엄마에게 물었다고 한다.
“엄마, 나 오늘도 밤에 많이 깨서 엄마 힘들게 했어?”
수면교육 실패 엄마 날 두고 가지 마세요.
신생아 때는 거의 모든 아가들이 잠에 예민하기 때문에 내 아이가 어떤지 정확히 판단하기 힘들다. 첫째 도연이는 누워서 자는 걸 정말 힘들어했다. 아기띠가 필수였다. 그래도 희망은 있었다. 100일의 기적, 통잠의 기적을 기다렸다. 행운이 나에게 찾아왔을까? 130일이 되어서도 난 여전히 아기띠를 하고 도연이를 재웠고 아이는 등센서가 달린듯 밤에 수시로 깼다. 그 때 난 확실히 알았다.
“도연이는 날 닮았구나…”
친정엄마가 날 키웠을 땐 수면교육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우는 아이는 무조건 안아서 달래고 업어서 재웠다. 그게 당연했던 시대였다. 이런 의식때문에 내가 더 잠에 예민한 아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와 남편은 수면교육에 도전해 보기로 결심했다. 내 어깨와 허리가 아작나기 전에 뭐라도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아기띠를 하고 재우다 잠이 들 때쯤 도연이를 눕혔다. 역시나 등센서가 작동했다. 그래도 안아주지 않았다. 꺼이꺼이 넘어가는 울음소리를 듣고 있자니 1분이 한 시간 같았다. 5분 정도가 흐르고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의 얼굴은 이미 눈물과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정말이지 고통스러웠다. 다시 아이를 눕히고 나왔다. 아이의 울음 소리는 점점 더 강해졌다.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 날 두고 나가지 말아요. 날 안아주세요”
울면서 날 바라보는 아이의 눈빛은 마치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결국 아이를 번쩍 안아 다시 아기띠를 했다. 억울하다는 듯 아이는 더 격하게 울다가 잠들었다. 이렇게 우리 부부의 수면교육은 끝났다. 단 한번의 시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의 결론은 ‘시간에 맡기자’였다. 수면교육에 성공한 사람들에 비하면 오래걸렸지만 결국 도연이도 침대에 누워 혼자 잠드는 시기가 찾아왔다.
단순히 내 인내심이 짧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만약 괴로움을 참고 더 버텼다면 수면교육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난 유전적으로 잠에 유독 예민한 아이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와 내 아이들 모두 잠자는 걸 힘들어하는 게 말이 안되니까. 이런 기질의 아이를 수면교육 한다는 건 일반적인 아이에 비해 시간과 고통이 배로 든다. 엄마 없이 혼자서 길고 외로운 시간을 버텨내야 하는 것이다. 한 두시간을 울다가 지쳐서 잠드는 건 수면교육에 성공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울다가 지쳐 도움 청하기를 포기한 것과 다름없다.
수면교육말고 수면지원
수면교육말고 수면 지원, 수면 패턴 찾기 등의 말을 사용하면 어떨까? ‘교육’이라는 단어가 붙으니 뭔가 꼭 배워야만 하는 것 같은 의무감이 생긴다. 하지 않으면 큰일날 것 같은 조바심이 들게 한다. 소위 말하는 수면교육도 결국 우리 아이에게 맞는 수면 패턴을 찾아가는 방법 중 하나라고 본다. 엄마는 아이 옆에서 아이가 가장 편안하게 잠들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다. 단어를 바꾸면 더 다양한 수면의 방법이 존중받을 수 있다. ‘수면교육 = 아이가 혼자 누워서자는 것’이 아닌 것이다.
수면교육이 내 아이의 수면 패턴을 찾는 과정, 아이의 편안한 수면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아이를 혼자서 자게 만들어야만 하는 게 아니니까. 정답은 없다. 우선 내 마음 가는대로 해 보면 된다. 아이가 엄마품에서 잠드는 걸 편안해 한다면 받아들이고 힘들어도 조금만 참아보면 어떨까.
하다가 내가 너무 힘들면 또 다른 방법을 써 보는 거다. 일반적인 수면교육을 해 봐도 좋다. 운좋게 잘 통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반대로 아이가 너무 힘들어하고 내 마음이 힘들다면 그만해도 괜찮다. 모든 건 엄마의 선택이다 🙂 아, 그리고 잠을 못 자 너무 힘들다면 주위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게 좋다! 잠보충은 필수다.
내가 수면교육때문에 힘들었을 때 오연경 박사님의 영상을 보고 마음의 방향을 정할 수 있었다. 나처럼 수면교육을 꼭 해야 하는지 마음의 갈등을 겪고 있는 분들이 꼭 참고했으면 좋겠다.
20개월 둘째는 아직도 수면패턴을 잡아가는 중이다. 아기 때부터 수면등, 백색 소음, 암막 커튼, 쉬- 소리, 자장가 등등 다 해 봤는데도 안 통했다. 엄마 손만 있으면 잘 자던 애가 2주전부터 갑자기 새벽에 깨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운다. 이유는 나도 모른다. 달래줘도, 혼내도 울긴 마찬가지다. 그렇게 40분을 울다가 다시 잠든다. 매일매일 지옥같은 시간을 보냈는데 최근에는 그나마 3일에 한번 꼴이라 좀 살 것 같다.
솔직히 힘들다. 달래지지도 않는 아이를 멍 하니 바라보며 눈물을 흘릴 때도 있다. 그래도 또 아침이 되어 언제 그랬냐는듯이 해맑게 웃는 아이를 보면 마음이 녹는다. 육아를 할 수 있는 힘이 여기에서 나온다. 두돌 전엔 또 바뀌겠지…! 라는 긍정적 마인드(?)로 이 시기를 견디고 있다. 도준이도 누나처럼 두돌이 지나면 지금보다 더 안정적으로 자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뭐 어쩔 수 없다. 내 팔자다…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
남들이 다 하는 수면교육을 하지 않았다고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신 잠자기 전 목욕, 불 끄기, 자장가 불러주기 등의 수면 의식과 잠을 잘 잘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후에 나와 내 아이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나와 내 아이가 행복하다면, 그게 우리 가족의 정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