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비 심한 아이에게 필요한 처방전

변비 심한 아이 약 폴락스산

통통통통. 도연이 배에서 들려온 소리다. 4일째 도연이는 변을 보지 않는다. 안쓰러울 정도로 볼록 튀어나온 배. 배 안이 가스와 변으로 가득하니 먹는 것도 영 시원찮다.

그날 밤, 신호가 왔는지 얼굴을 찌푸리며 힘을 준다. 엥? 기저귀를 보니 아무것도 없다. 도연이는 배가 아픈 건지, 찝찝한 건지 계속 힘을 주며 울었다. 마려울 때 누면 된다고 그만하라고 달래주는데도 그치지 않았다. 기저귀를 벗겨보니 항문에 끼어있는 변… 놀란 마음에 남편을 불렀고 결국 손으로 빼줬다. 부모가 되니 별별 경험을 다 하는구나 생각에 헛웃음이 나왔다.

도연이가 3살, 31개월 때의 일이다. 이날 이후 도연이는 변비약인 ‘폴락스산’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전히 먹고 있다. 양과 횟수는 줄었지만 아예 끊지는 못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은 것 같다.

“변비약을 그렇게 오래 먹여도 괜찮은거야? 내성 생긴다는데 불안하지 않아?”

도연이가 여전히 약을 먹는다는 이야기를 하면 지인들이 조심스레 물어본다. 나도 그랬다. 내성이 생길까 봐 불안했고, 건강에 해롭지 않을지 걱정했다. 때로는 언제까지 먹여야 하는지 답답함에 눈물도 흘렸다. 그런데 이제는 걱정하지 않는다. 왜 걱정하지 않느냐고? 내가 걱정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제부터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변비 심한 아이의 마음이 더 힘들다.

“도연이가 약을 먹은 지 1년이 지났네요. 1년이 지나도 약을 끊지 못했을 땐 큰 병원에 가 보시는 걸 추천드려요. 별문제는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한번 가 보세요.”

별문제가 없는데 왜 큰 병원에 가 보라는 거지? 뭔가 검사라도 받아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큰 병원이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무섭다. 단어가 주는 위압감은 대단하다. 고민했지만, 만약을 위해 가 보기로 결정했다. 예약을 하기 위해 삼성병원에 전화를 했다. 아주 다행히 딱 한 타임 시간이 남아있었다. 선택지가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3개월 뒤에나 예약이 가능하다고 했다.

평일 어느 날, 아침 7시 인천에서 강남에 있는 삼성병원으로 향했다. 유치원을 빠지고 병원을 가는 게 꼭 여행 가는 것 같았는지 도연이는 마냥 신이 났다. 이른 아침부터 병원엔 사람들로 가득했다.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을 보니 어쩐지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도 어린이 병동은 좀 나았다. 뭐, 큰 병원이라고 다 중증 환자들만 오는 건 아닐 테니. 우리 도연이도 별일 없을 거야 🙂

의사 선생님을 뵙기 전 설문지(?)를 작성했다. 평소 아이의 생활 패턴과 변에 관한 질문이었다.

“폴락스산은 약이 아니에요. 먹는 기간은 중요하지 않아요. 폴락스산을 먹는 것보다 중요한 건 아이의 트라우마를 없애주고, 아이가 편안한 마음으로 변을 대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거예요”

처음 듣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런데 꼭 처음 듣는 이야기처럼 머릿속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아마도 이야기를 전달하는 선생님의 태도와 분위기가 달랐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다 먹은 약을 처방받기 위해 동네 소아과에 방문하면 선생님은 언제나 도연이의 배에 청진기를 대고 손으로 만져보고 두드려봤다. 배가 딱딱하거나 통통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아직 때가 되지 않았으니 약을 더 먹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진료는 끝이었다.

설문지를 읽어본 최연호 교수님은 나와의 대화에 집중했다. 도연이는 내 옆에 앉아 함께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치료를 위해 병원에 왔지만, 상담을 받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절대 아이에게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폴락스산은 약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고 편하게 먹이라고. 아이의 트라우마를 지워주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먹는 양과 횟수는 부모가 알아서 조절해도 된다는 말도 해 주셨다. 그렇게 3개월의 약을 처방받고 진료실을 나왔다. 아래는 변비 심한 아이로 마음 고생 중인 엄마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영상이다. 최연호 교수님 이야기를 듣고 용기를 얻어가시길 바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마음이 한결 가벼워짐을 느꼈다. 교수님을 뵐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날 이후 난 소아과에 방문해서 폴락스산을 처방받지 않는다. 의사와 아이 간의 기계적이고 일방적인 진찰은 더 이상 받고 싶지 않아졌다.대신 직접 약국에서 약을 사고 먹는 양과 횟수도 도연이의 상태를 보며 내가 직접 조절하고 있다. 아이에게 화장실에 가라는 말도 하지 않는다. 3일째 변을 보지 못해 볼록 튀어나온 배를 보면 한숨이 푹푹 나오지만, 최대한 감정을 숨기고 쿨하게 대하려고 노력한다. (얼굴에서 티 나려나?…)

천천히 가더라도 괜찮아. 널 믿어!

아이를 키운다는 건 크고 작은 고비들을 하나하나 클리어해 나가는 게임이다. 단, 언제 끝날지 모르는.

도연이는 어렸을 때부터 감각에 예민했다. 음악 소리, 자는 곳, 음식의 식감, 재료의 촉감, 물의 온도 등 몸으로 느껴지는 모든 것들에 예민했다. 이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변화’를 받아들이는 데도 어려움이 있었다. 계절이 바뀌며 옷의 길이가 짧아지는 것, 신발에 모래가 들어가는 것, 끈적끈적한 로션을 바르는 것, 구두의 찍찍이가 서로 다르게 붙어있는 것 등 도연이가 절대 용납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이 중 대부분은 나이가 들며 극복했다. 그런데 아직도 극복 중인 단 하나가 있다. 바로 ‘응아 싸기’다. 아마도 추측하건대 응아를 할 때 변하는 몸의 느낌이 싫은 것 같다. 편하게 잘 놀다가 갑자기 응아를 하기 위해 있는 힘껏 힘을 주어야 하니까. 게다가 냄새나고 이상한 무언가가 결과물로 나오니 엎친데 덮친격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거다. 그래서인지 도연이는 변기에서 대변을 보기 전까지 항상 방에서 혼자 서서 변을 봤다. 응아를 하는 것도 죽도록 싫은데, 이를 위해 자세를 고쳐야 한다니 쉽사리 마음이 움직이지 않은 게 당연하다.

변비 심한 아이 폴락스산4g

시간이 흘러 변기에 응아를 보는 지금도 애착이불이 필요하다. 마음이 기댈 곳이 있어야 힘을 줄 수 있나 보다. 이불로는 안될 땐 날 부른다. “엄마 손 좀 잡아주세요”라고. 기댈 곳이 없기 때문일까 아직까지 단 한 번도 기관에서 응아를 한 적이 없다. 오죽하면 4살 어린이집 선생님이 도연이 예쁜 응아 한 번만 보여주고 졸업하면 안 되느냐고 말씀하셨던 적도 있다.

하지만 도연이는 천천히 본인의 속도에 맞춰 바뀌어가고 있다. 절대 응아 기저귀는 못 뗄 것 같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너무 쉽게 변기에 성공했다. 온몸에 닭살이 돋는데도 응아를 누기 싫어 무릎 꿇고 앉아 발뒤꿈치로 똥꼬를 막았던 도연이가 이제는 스스로 마렵다고 이야기한다. 매일 아침 10g의 폴락스산을 이틀에 한 번 4g으로 줄였는데도 문제없이 화장실에 간다. 이처럼 시간이 흐르면서 남아있는 문제들도 자연스럽게 해결되리라 믿는다.

엄마의 자리에서 해줄 수 있는 건 영양소 가득한 식사를 차려주는 것, 어떤 응아를 하든 응원하고 칭찬하는 것, 응아는 꼭 필요하고 좋은 것이라는 인식을 꾸준히 심어주는 일이다. 절대 아이를 탓하거나 재촉하지 말자. 변비를 유발하는 최악의 조건은 바로 ‘엄마의 걱정과 잔소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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