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인 난 감정의 바닥까지 들키지 않으려고 유치하고 옹졸했다. 그래야만 했을까. 부끄럽기 그지없다.
딸을 키운다는 게 마냥 좋을 거라는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 않았다. 나와 비슷한 딸, 분명 부딪히는 지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싸움이 이렇게까지 날 무너뜨릴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어른인 내가 참으면 된다고, 그깟 아이의 말에 얼마나 상처를 받겠느냐고 가볍게 여겼다.
Table of Contents
딸 힘든 점 감정싸움의 서막
이비인후과 약이 유독 독했던 탓인지 유치원에서 돌아온 도연이는 내내 예민했다. 없는 시간을 쪼개어 내가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을 보고는 본인이 유치원에서 읽어 본 책인데 왜 또 빌려왔냐는 핀잔을 줬다. 순간 도서관에서 이 책 저책 들추어보며 고민했던 시간이 허망했다. 이내 감정을 추스르고 그렇게 말하면 엄마도 속상하다고, 설령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우선 빌려와 줘서 고맙다고 이야기하는 게 상대방을 배려하는 거라고 말했다.
저녁식사 후 도도남매는 디저트로 쿠키를 먹었다. 평소 쿠키와 우유 조합을 좋아했던 걸 깨닫고 ‘우유도 같이 먹을래?’라고 권했다. 흔쾌히 알겠다고 답했고 쿠키 2개를 우유와 함께 맛있게 잘 먹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엄마 때문에 내가 쿠키를 두 개나 먹었잖아”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쿠키 한 개 먹고 있었는데 우유를 주겠다고 해서 하나 더 먹었잖아”
“어?…너가 우유랑 같이 먹는 거 좋아하니까 챙겨준 건데? 그게 잘못된 거였어?”
“응”
어안이 벙벙했다. 이런 걸로 엄마를 탓하기도 하는구나 신기했다.
“그래. 다음부턴 그럼 처음부터 챙겨줄게”
라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밤 8시 잠들기 전까지 도연이와 나의 관계는 아슬아슬했다. 아마도 나 역시 생리 중이라 체력이 많이 무너진 탓에 평소보다 더 예민했으리라 생각한다. 다음날은 부디 나와 아이의 컨디션이 모두 나아지길 바랐다.
딸의 사과를 받지 않은 못난 엄마
다음날, 유치원에 가는 것보다 집에서 쉬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그다음 날 썰매장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침 일과를 마치니 산책에 가고 싶다는 도연이. 컨디션상 집에서 쉬는 게 나을 것 같았는데 죽어도 나가야겠단다. 세수하고 로션을 바르는 데 또 일이 터졌다. 평소에도 얼굴에 로션을 바르는 걸 싫어하는데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 더 예민하게 느껴졌나 보다. 방문을 닫고 들어가길래 문을 살며시 열어보니 볼 한쪽에 빨갛게 손가락 자국이 보였다. 손으로 긁은 거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대답했다. 로션 바른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다.
싫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고 여느 때처럼 이야기하고 마음을 추슬렀다. 양말을 고르는 것도 10분… 이쯤 되면 그냥 나가지 말았어야 했다. 나가고 싶다고 해도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자고 나서 나가자고 말했어야 했다. 아이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외출을 감행한 나는 세상 못난 엄마가 되었다. 집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쇼핑몰에 도착하기까지 도연이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어슬렁어슬렁 터벅터벅. 나가자고 한 건 본인인데 기르던 강아지가 잘못되었기라도 한 듯 죽상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화가 치밀었다.
“너가 나오자고 했잖아. 엄마는 몸 컨디션 안 좋아서 집에 있고 싶었어. 나오자고 했으면서 이게 뭐야?”
“….”
“왜 이렇게 엄마를 힘들게 하는 거야 정말”
도연이에게 이야기를 하면서도 감정을 추슬러야지, 이런 말을 아이한테 왜 하는거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난 아이를 채근했다. 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할 걸 알면서도 내 마음을 쏟아냈다. 아이는 멍하니 날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눈이 빨개지는 아이에게 왜 우냐고 물으니, 엄마가 화를 내서 그렇단다.
아이의 사과를 받아야 하는데 받을 수가 없었다. 사과를 받으면 웃어 보여야 하니까. 당장 그럴 자신이 없었다. 손바닥 뒤집듯 기분이 회복될 것 같지 않아 나도 조바심이 났다. 더 못난 모습을 아이에게 보일까 봐 걱정이 됐다. 다행히 남편에게 전화가 걸려왔고 이야기를 하며 감정을 다독였다. 그리고 아이와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딸 힘든 점 갈수록 어렵다.
아이가 아픈 걸 알지만 그렇다는 이유로 짜증받이가 되는 건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는다. 아이는 커갈수록 본인만의 다양한 논리로 날 공격한다. 발전하는 아이의 공격에 맞춰 내 마음의 그릇도 레벨업되어야 하는데 그 속도를 쫓아가지 못해 항상 당하는 느낌이다. 고작 6살짜리 아이의 말인데도 가끔은 타격감이 꽤나 크다.
그럴 때마다 ‘엄마니까 참아야지’를 되뇌인다. 참을 인자를 그린다. 하지만 모든 게 다 엄마 탓이라고 하는 것만 같은 아이의 말이 반복되면 점점 짧아졌던 인내심의 끈은 끊기고야 만다. 결국 난 아이에게 화를 낸다. 참치 못할 거면 일찍 화를 내는 게 나았을 수도 있다. 감정의 크기가 커지진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한마디 하고 나면 난 또 어느새 죄인이 된다. 아픈 아이의 마음도 전부 받아주지 못하는 코딱지만 한 마음을 가진 엄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도연이와 이렇게 다툴 때면 남편과의 연애시절을 떠올린다. 난 말하지 않아도 남편이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랐다. 화가 났을 때조차 나에게 끝까지 말을 걸어주길 바랐다. 도중에 남편이 지쳐도 내 자존심에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가 힘들었다. 남편 본인이 힘들어도 내 마음은 들여봐주기를 바랐던 이기적인 여자친구였다.
꼭 예전의 내 철없던 모습을 도연이에게서 보는 것 같아 더 힘든 걸지도 모르겠다. 같은 여자라서 감정의 충돌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하고? 예전의 남편이 그랬던 것처럼 이제는 내가 아이를 보듬어줘야 하는데 아직 난 그런 그릇이 못되나 보다. 심지어 나보다 도연이가 더 낫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아이가 본인의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 심호흡을 하는 등의 노력을 보일 때다. 미안해, 고마워라는 감정 표현에도 인색하지 않다. 마음과는 다른 행동으로 날 속상하게 할 때도 있지만 고작 6살 아이가 이만하면 훌륭하다는 생각이다.
내가 너무 받기만 하는 사랑을 해서 이런 아이가 나에게 온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실제로 도도남매를 기르며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 나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감정을 처음으로 느꼈다. 힘들더라도 내 감정은 뒤로 미뤄두고 아이를 챙긴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라면 결코 하지 못했을 일들이다. 엄마라는 사람이 되어서야 비로소 부정적 감정들이 무뎌졌다. 반대로 긍정의 감정은 더 많이 생겨났다.
엄마가 감정적이면 예민한 아이는 감정 컨트롤에 더 어려움을 느낀다고 한다. 평소 명상, 운동, 감사 일기 등을 통해 크게 요동치지 않는 감정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체력적으로 무너지는 순간 평소였으면 그냥 넘겼을 아이의 말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사람인지라 AI처럼 매일매일이 즐겁게, 평온하게 셋팅될 수는 없다. 다만 이런 노력들을 기울이다 보면 내 부정적 감정을 빨리 알아차리고 회복하기 위한 행동을 취할 수 있다. 이성적이고 긍정적인 선택을 하는 데도 도움이 되더라.
언제나 나에게 많은 위로를 건네주는 아이들에게 못난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 흔들림 없는 편안함을 물려줄 수 있는 내가 되길 기대한다 🙂
✔️ 도연이와의 대화법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생겨 찾아본 영상. 영상을 보고 답을 찾았다. 근본적인 문제는 대화방법이 아니었다. 스스로 정한 ‘엄마의 기준’이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나의 취약성을 인정하고 연민으로 끌어안았을 때 아이도 존중할 수 있게 된다고 알려주신다. 딸과의 관계에 고민하고 있는 엄마에게 시청해 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