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둘째는 없을 거야.
2019년 무더운 여름, 늦은 밤 11시 꽃무늬 몸뻬 바지를 입고 아기띠를 한 채 동네를 걸었다. 이미 집에서 도연이를 재우기 위해 남편과 난 전쟁 같은 한 시간을 보낸 후였다. 좀처럼 울음이 그치지 않아 결국 밖으로 나왔다. 분위기가 전환되어서인지 아이는 잠잠해졌고 그렇게 30분을 걸어 다니다 집으로 돌아갔다. 새벽 1시가 되어서야 도연이는 깊은 잠에 들었다.
두 돌쯤 되자 도연이의 잠패턴이 잡혔다. 그렇다고 내가 편하게 잘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소위 말해 ‘통잠’을 자기 시작한 건 4살이 되어서니까. 즉 임신기간을 포함해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가 통잠을 잔 횟수는 손에 꼽는다. 두 돌전까지 정말 힘들었다. 잦은 아기띠 착용으로 허리가 아파 한의원에 다녔고 잠 부족으로 생긴 머리 통증 때문에 난생처음 통증 의학과에 갔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 당연히 우리 부부에게 ‘둘째’는 불가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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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언제 힘들었더라?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잊히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듣게 된 모진 말은 영영 잊히지 않는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아이 때문에 힘들었던 기억은 시간이 갈수록 옅어졌다. 잠을 못 자 힘들었던 기억조차 남편과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다. (너무 변태스러울지도…?) 그리고 아이의 귀여움이 정점을 찍고 극한 육아가 수월해졌던 3살, 조금씩 둘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제 언니도 결혼해서 나가서 사는데, 너희 들어와서 도연이 학교 들어갈 때까지 엄마랑 같이 살면 어때? 혼자 살기에도 엄마는 적적하고… 너희 돈도 모을 수 있고 둘째 낳으면 엄마 도움받을 수 있으니 좋을 것 같은데. 잘 생각해 봐”
언니의 결혼으로 38평 아파트에서 혼자 몇 개월을 지내보신 엄마는 적적하셨던지 우리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아빠는 기러기 아빠로 수십 년째 부산에서 혼자 지내고 계신다.) 우리에게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엄마의 이야기가 방아쇠가 되어 우린 고민 끝에 둘째를 갖기로 결심했다. 한 번의 계류유산을 거쳐 도연이와 3살 차이 나는 도준이를 임신했다. 그리고 2024년 도도남매는 이제 6살, 3살이 되었다.
둘째갖는이유 제 소신은 말이죠
2019년 도연이가 태어나던 해, 코로나는 여러 사람들의 생명뿐만 아니라 작은 씨앗들이 움틀 기회조차 빼앗아갔다. 20년 된 구축 아파트에 살고 있는 우린 특히 저출산을 실감하고 있다. 44가구 중 2019년생 6살 아이는 도연이를 포함해 3명, 그보다 어린아이는 도준이가 유일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6살 아이를 키우는 집은 모두 애가 둘씩이라는 거다… 하하 🙂 역시 구축 아파트라서 부모님 세대의 가구가 가장 많다. 덕분에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예절을 배우고 어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중이다.
이런 시대에 애 둘을 낳아 키운다고 하면 사람들은 “경제적 여유가 있나 봐요”라는 생각을 한다. 맘카페를 둘러봐도 둘째를 고민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돈’에 포커스를 두고 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더욱이 애가 둘이면 정해진 자원을 나눠써야 하니 고민되는 게 당연하다.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재고 따지는 거 없이 아이가 배우고 싶어 하는 걸 충분히 지원해 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동시에 부부의 노후까지 대비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다.
그렇다면 우리집은?
웃프게도 정확하게 반대다. 나와 남편은 도연이를 갖기 전까지 경제적 개념이 전무했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가 돈을 모으기 최적의 기간이었음에도 우린 그렇지 못했다. 적당히 모았고 적당히 놀았다. 개념이 없어 바보 같은 선택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무슨 자신감으로 둘씩이나 낳았느냐고? 이런 질문을 한다면 난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부끄럽지만 아이가 낳은 후 저희의 삶은 180도 바뀌었어요. 삶을 대하는 태도가 변했죠. 돈 못지않게 놓쳐서는 안 될 행복이 무엇인지, 무엇 때문에 돈을 벌어야 하는지 그 목표가 명확해졌어요. 아마 남매를 낳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희는 없을 거예요. 남매 때문에 더 열심히 하루를 살고 공부를 해요”
하나와 둘을 결정하는 핵심은 결국 경제적인 부분과 돈으로 값을 따질 수 없는 형제자매간의 우애와 사랑 중 어느 쪽에 무게를 싣고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본다. 하나가 좋다 둘이 더 좋다 단정 지을 수 없다.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고 삶의 태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주체적으로 선택했다면 그에 따라 책임지는 행동을 하면 된다. 외동을 선택했다면 경제적으로 편안한 대신 아이가 이타적인 아이로 잘 자랄 수 있도록 이끌어줘야 하는 것 같다. 반대로 둘째를 결정했다면 경제적으로 더 나은 환경이 될 수 있도록 부모가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둘을 낳으면 경제적으로 힘들어진다’라고 기정사실화해서 말하는 사람들은 이런 성향일 확률이 높다.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회사뿐’이라고 생각하거나 그 외에 파이프라인을 늘리는 방법에는 관심이 없고, 있다 해도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는 거다. 혹은 나에 대한 소비를 더 이상 줄이고 싶지 않은 경우도 있겠다.
우리 부부는 도연이를 임신했을 때 처음으로 미국 주식을 시작했다. 그리고 도준이를 임신했을 때 부동산 공부를 시작했다. 너무 섣부르게 판단해 지금 돌아보면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아이가 아니었다면 ‘투자 공부’는 죽을 때까지 몰랐거나 더 늦게 시작했을 것 같다. 투자 공부에 눈을 뜨게 해준 게 바로 ‘아이들’인 거다. 투자 공부만이 아니다. 월급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나만의 일’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게 해 준 것도 아이들이다. 그리고 우린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통해 결과를 내기 위해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둘째를 낳아 본 사람만이 안다. 넷이 되었을 때의 벅찬 행복을. 아이들은 우리 부부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나 다름없다.
✔️ 무엇을 기준으로 둘째임신을 결정해야할지 막막하다면 아래 똑똑박사님의 영상을 참고하길 추천한다. 남편과 본인의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를 똑부러지게 알려주신다…!
둘째를 갖기에 더 나은 환경에 대한 내 생각
일단 둘째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면 둘째를 낳거나 엄마가 나이가 들어 임신이 더 이상 불가능해질때야 비로소 끝난다고 한다. 그만큼 한번 생긴 마음은 접기가 어렵다. 아마도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 거다. 둘째를 낳으면 어떨까, 둘째를 낳으면 많이 힘들까? 때로는 둘째를 낳으면 첫째보다 훨씬 더 잘 키우는 슈퍼맘이 되는 상상을 했다가 또 어느 날은 둘째 때문에 내 삶이 없어지는 지옥을 상상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온탕과 냉탕을 왔다 갔다 한다.
둘째를 낳아 키우는 입장에서 조심스레 둘째를 낳아 키우기에 더 나은 환경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니 가볍게 읽고 넘어가셔도 좋다 🙂
먼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가족이 주변에 있는 게 좋다. 나는 친정엄마와 함께 살고 있어 도움을 받는 부분이 많다. 비록 맞벌이 부부처럼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지만, 하원 전과 등원 후 엄마가 계시니 수월한 편이다. 그리고 남편의 퇴근이 늦거나 약속이 있는 날 혼자서 해야 할 일을 엄마와 함께 하니 확실히 덜 힘들다. 아이들과 힘들게 보내야 할 시간에 혼자가 아니라는 것만 해도 덜 외롭고 힘이 된다.
두 번째로 잠에 예민한 아이가 나올 확률이 적어야 한다.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싶겠지만 둘째가 어떤 기질인지에 따라 부부의 육아 난이도가 달라진다. 우린 첫째 도연이가 잠에 예민했기 때문에 둘째는 당연히 순둥이가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글쎄 더한 아이가 나왔다. 아들이라서 힘도 세고 목소리까지 크니 두 배로 힘들다. 지금에야 많이 받아들여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하고 덤덤하게 생각하지만 초기에는 정말 암울하고 막막했다.
그리고 잠이 예민하면 어쩔 수 없이 잔병치레를 할 확률이 높다. 맞벌이 부부라면 연차를 그만큼 많이 써야 하는 거다. 아이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 연차를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는 직종이거나 자영업자가 아니라면 이런 둘째를 만났을 땐 어느 정도 힘들 각오를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확실히 좋다. 부부가 경제관념이 확실히 잡혀있고 미래를 위한 투자도 하고 있다면 더욱 좋다. 아이에게 올바른 경제공부를 시켜줄 수 있으니 말이다.
둘째를 낳았을 때의 청사진이 그려진다면 아이를 낳아도 잘 헤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 부부가 그랬으니까. 아직 남들에게 인정받을만한 결과를 만들어내진 못했지만 남편에 대한, 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다. 이런 글을 쓰는 것조차 나에게는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동기부여가 된다.
지금 늦었다고 앞으로도 늦은 건 아니다. 경제적인 부분 못지않게 중요한 건 부부의 양육태도와 삶에 대한 자세다. ‘돈’에 대한 생각 때문에 둘째를 낳았을 때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부모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글이 정말 좋아요 🙂 당신의 가치관을 응원해요!!